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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콜럼버스의 달걀, 서울의 아파트

by 블루프린터

어떤 발견은 뒤늦게 온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운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사실 이건 콜럼버스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대한 일화라는 설도 있지만...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통찰이다.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귀족들이 콜럼버스를 보고 말했다. "그깟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오?" 그러자 콜럼버스가 달걀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도전했다. "이 달걀을 세워보시오." 귀족들이 아무리 애써도 달걀은 넘어졌다. 콜럼버스는 달걀의 밑부분을 살짝 깨뜨려 평평하게 만든 다음, 탁자 위에 똑바로 세웠다. "이것 봐요. 방법을 알고 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달걀을 세우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 '간단함' 뒤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2023년 어느 가을날, 나는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매물 안내문을 보고 있자니... 정말 숨이 턱 막혔다. 아파트 하나가 15억, 20억을 호가하고 있었다. 84제곱미터짜리 평범한 아파트가 말이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게 된 거지?'

그때 문득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부동산 현실... 혹시 이것도 달걀을 세우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닐까? 방법을 모르니까 모두가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서울 집값이 왜 이렇게 비쌀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차고도 넘친다. 저금리, 유동성 과잉, 투기 수요, 공급 부족, 정부 정책 실패... 전문가들은 이런 용어들을 늘어놓으며 그럴듯한 분석을 내놓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속이 시원하지 않다. 마치 감기 증상만 나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만약 질문을 바꿔본다면 어떨까?


"만약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16세기 유럽의 탐험가와 21세기 서울의 아파트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잠깐만... 정말 상관없는 이야기일까?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5세기 후반의 유럽과 21세기 초반의 대한민국, 특히 서울 수도권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압력솥이 된 땅

15세기 유럽을 한번 상상해 보자.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었다.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까지 죽어나갔다. 하지만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1400년경 약 6천만 명이던 유럽 인구가 1500년경에는 8천만 명을 넘어섰다. 100년 만에 3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땅은 그대로다. 더 심각한 건, 중세 유럽의 장자 상속제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지만, 둘째와 셋째는? 갈 곳이 없다. 용병이 되거나, 도시로 몰려가거나, 아니면... 글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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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금융의 숫자를 읽고, AI로 데이터를 분석하며, 심리학으로 사람의 마음을 탐구합니다. 데이터와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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