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은 필요 없어요.

세 사람의 어느 날

by 봄이의 소소한 날

세 사람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한다.

그들의 내면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지만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사회성으로 인해 서로에게 일상을 털어놓고 위로받고자 한다. 그날도 역시 세 사람은 의지와 공감을 얻기 위해 언어를 꺼낸다. 그런데 대부분의 날은 적어도 셋 중 하나는 하늘의 변화를 바라 볼만한 여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날은 모두 그렇지 못했다.


K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회의시간에 서툰 발표를 해서 훈계를 듣고 시무룩해져 있었다. ‘물론 내가 미리 준비를 못한 것도 있어요. 난 내일까진 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름 생각나는 대로 말했는데.. 엄청 깨졌어요.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반박하길래 대응한다고 했지만 그 말도 공격당했어요. 모두 맞는 말이었죠... 내 잘못이지만 내가 회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걸 조금도 알아주지 않더라구요. 회의시간마다 다들 배테랑이라 초보인 나에게만 시선이 오고.. 그때마다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가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속상해요.’


그러자 S도 말한다.

‘나는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어제저녁 먹자고 시댁에서 불러서 갔는데 뭔가 축하하는 분위기더라구요. 큰 형님 둘째 형님 다 모여서 음식도 많이 주문하고 화기애애한데 나한테는 조심하는 것 같았어요. 알고 보니 큰 형님이 임신을 해서 축하해 주는 자리였어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요. 나한테 미안해하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엄청 울었어요. 마치 결혼하고 1년 반이 넘도록 애가 안 생긴다고 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잖아요. 남편도 알면서 말 안 해 준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이번엔 B가 눈물지으며 말한다.

‘나는 이런 세상이 너무나 맘에 들지 않아요. 우리 딸은 아직도 믿고 있더라구요.’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체육시간에 교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누군가 딸의 교복치마를 들고 가더란다. 그래서 딸이 ‘그거 내 옷인데’하고 말하자 그 아이가 ‘증거 있어?’하고 물어서 ‘내 치마단에 이름 있어’하면서 보여주자 ‘그럼 치마 좀 빌려줘’하고 가지고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려주지 않는다고 그것도 며칠 전 다른 친구가 학교 방송국 면접에 교복을 빌려달라고 해서 이틀 동안을 체육복을 입고 다니다가 오늘에서야 입고 간 교복이라고... 그래서 아침에 하복 치마를 입고 가는 딸을 보며 어이없었다고... 당장 교복을 사주는 것보다 돌려줄 거라고 믿으며 아무런 방어를 하지 않는 딸이 살아가야 할 이 험한 세상이 싫고 원망스럽다고 했다.


나는 그 세 사람을 모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생각해 본다. 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들의 대화는 이미 다른 주제로 옮겨가 있었다


누구도 해결책을 바라며 이야기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겪은 상황에 대해 들어주고 알아주고 공감해 주면 된다. 나의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습관이 또 잘난 척하며 나와서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것이다. 해결을 바라는 것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그들은 얼마 후에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K는 회의 전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수업에 대해 충분한 조언을 받고 회의에 임하면서 보다 나은 발표를 할 수 있었다.

S는 임신에 좋다는 한약을 먹고 임신을 했다.

B는 딸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잘 처신할 것을 여러 번 이야기하고 딸을 믿기로 했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나는 왜 그게 서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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