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7

아내의 경계을 넘어, 노년의 자립을 위한 한 걸음/ 주방, 엄마, 적당히


주방에서 탄생한, 추억과 그리움의 엄마 맛


먹고 싶은 요리를 하면 어머니기 해 주셨던 추억의 맛이 가미된 특별한 맛이 소환된다. 갱춘기의 감정 관성을 보상하고 심리 치료를 하는데 특효 처방전이다. 어머니 음식만의 마력이고, 피로와 술에 절어 속을 달래고 싶을 때 어머니의 음식이 떠올랐다. 해장의 몸부림과 허기는 탄수화물로 채워 달라고 배꼽시계를 연달아 울려 댄다. 당뇨병 임계치인 필자는 특히 심하다. 이 때, 들기름을 잔뜩 넣고 자박하게 조려낸 겉절이를 흰 밥에 올리고 그 위에 조미된 김을 얹어 후~ 후~ 불어 먹으면 숙취와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숙취로 힘든 상태에서도 그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고, 그 맛을 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유0브를 찾아 보고, 네0버에 물어 봤다. 비슷한 레시피가 있으나 믿을 수 없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조리 방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들기름을 듬뿍 넣으면 어머니께서 해 주던 그 맛이 날 줄 알았으나, 들기름 맛 밖에 나지 않아 속이 더 메슥거렸다. 들기름을 조금 넣는 대신 물을 많이 넣고 오랜 시간 조렸더니 냄비와 겉절이가 함께 타고 말았다. 추억과 그림움의 맛을 찾아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술에 찌든 속도 검게 타 들어갔다.



적당히 속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


잔소리 듣기 싫어 전화를 하지 않으려다 결국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여쭙게 되었다. 음식을 하는 방법을 묻고 답하느라 통화 시간이 길어졌다. 음식 초보자의 귀에는 어머니의 단순한 듯한 조리 과정 설명이 어려웠다. 경험치가 완전히 달라 나의 얄팍한 입맛만 자극 할 뿐, 요리 과정, 계량, 조리 순서가 머릿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조리 시간을 물으면 '적당히...', 계량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물으면 '적당히... 맛있을 만큼...' 뭘 물어도 어머니의 대답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고 '적당히...'라는 말만 돌아왔다. 어머니가 음식을 하는 중간 중간 입으로 맛을 보거나, 눈으로 조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적당한 식감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어머니 요리에서 '적당히'는 경험과 배려가 복합된 고도의 사랑 표현이었다.



어머니의 '적당히', '집 밥'이 품은 철학


어머니에게 '적당히'라는 단어는 단순히 대충 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른 식성과 입맛을 모두 아우르려는 깊고 유려한 철학이 담긴 요리 고수의 표현이었다. 가족 구성원은 각기 다른 식습관을 가지고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식성이 변하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그런 가족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며 모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재료의 양, 조리 시간, 조리 순서, 정성까지 고도로 계산해 그 '적당히'라는 말에 담아내셨다는 것을 요리를 시작하며 깨달았다.

처음 요리는 해장국(참고로 필자는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많이 먹는 편이다.) 중심이었다. 음식이 가져야 할 '적당히'라는 철학과 가족을 배려하지 못한 이기적인 음식이었다. 아직까지 필자 입맛이 우선일 때가 많지만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면서도 가족의 입맛과 식성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입맛의 근원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손맛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손맛은 잊고 있던 옛 추억과 애틋한 감정을 소환한다. 갱춘기에 시작하는 요리 여정이 갱춘기 감정 치료에 특효약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마치 때가 되면 물 맛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어머니 맛 길을 따라 요리를 하다 보면 무력감과 외로움으로 지친 갱년기의 마음이 치유된다.

'최근 요리를 하면서 조미료와 양념을 적게 넣는다. 과한 양념을 덜어내고 적당한 맛이 선물해 주는 어머니의 철학을 닮아 간다.

삶의 여정에서 과도함을 덜어내는 철학을 배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상실감을 채우는 음식의 맛


요리 때문에 어머니와 통화하는 횟수가 늘어나며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자주 묻게 되었다. 연로한 어머니는 여러 병을 앓고 계시지만, 아버지를 위해 매일 세 끼 식사를 준비하시며 늘 힘겨워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편을 들자니 평생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그저 밥 세끼를 원하시는 것이 큰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요즘 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어머니가 혼자 식사를 준비하는 상황은 불평등하게 보일 수 있다. 필자 또한 요리를 한 이후, 아버지에게 요리를 직접 해보시라고 어머니 편을 들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꼬박꼬박 뜨끈한 새 밥을 지어 아버지를 챙기신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책임감이 느껴진다. 음식은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책임이며, 단순히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을 넘어,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음식의 맛은 그 자체로 어머니이고 상실감을 채워주는 영양분이다.

어머니가 평생 만들어 온 다양한 음식 속에는 입맛 뿐만 아니라, 70년대 초 어려웠던 시절의 아픈 추억과 그리움을 아련히 담아내고 있다. 오봉(쟁반) 주변에 앉아 물에 밥을 말아 김치 반찬에 허겁지겁 먹던 모습, 여자들은 부엌에서 밥을 먹던 상황을 당연히 여겼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음식에는 우리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때로는 기억하기 싫은 가족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연탄가스를 마셨을 때 가족 목숨을 살렸던 동치미 국물, 며칠을 두고 먹었던 김치 콩나물국, 싸우고 피가 날 때 발랐던 치약 등 이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요리를 통해 가족을 사랑하는 법 뿐만 아니라 상실감을 요리하며 어머니 음식의 맛을 찾아가고 있다.



'들기름'을 품은 '거먹지', 갱춘기 치료제


필자의 주요 식재료는 단순하다. 어머니 손맛 중 입맛 치료제는 먹지 않고 버려졌던 음식의 부재료였다. 특히 거먹지는 여름이면 꼭 먹던 추억의 음식이었다. 김장할 때 무청을 소금에 절여 놨다가 이듬해 5월경에 꺼내서 요리해 먹는 음식이다. 생김새는 다소 혐오스러워 손이 가지 않고, 요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지금은 건강식으로 먹지만 예전엔 먹을게 없어서 버려지는 무청을 염장해 이듬해 먹었던 배고픔을 달랜 보릿고개 음식이다. 조리 방법을 소개하면, 뜨거운 물에 2~3시간 삶아서 짠기운을 완전히 빼야 한다. 이 때 역한 냄새가 불쾌감을 유발하니 환기를 잘 시켜야 한다. 잘 삶아진 무청을 12시간 찬물에 담가 짠 맛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물기를 꼭 짜낸 다음 들기름과 들깨가루, 새우젓, 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쳤다가 쌀뜨물을 자박하게 넣어 10분정도 중불에 끓여내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기술이 있다. 짠 무청을 처음 삶을 때 무청 줄기를 손으로 눌러 물렁물렁한 식감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물렁물렁한 정도를 가늠하지 못하고 너무 삶아 식감이 완전히 떨어지거나, 덜 삶아 질기고 짜게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해가 지날 수록 적당한 물렁물렁함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그 미각을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을까? 지금처럼 계량할 수 있는 도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순전히 오감으로 가족들의 입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 내셨을 것이다. 시집 올 당시에는 대가족이 모여서 살았기에 시댁 사람들의 눈치로 밥을 하고, 눈물로 간을 맞추며 어머니 만의 맛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머니의 거먹지는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들기름의 고소함으로, 속상함의 눈물을 새우젓의 짭짤한 맛으로 견뎌내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견딤의 영양제였던 거먹지가 이제는 필자에게 사회의 눈치에 찌든 내면의 눈물을 맛있게 치료해주는 영양제가 되고 있다. 그 투박하면서도 깊은 견딤의 어머니 맛이기에 지금도 김장 철이 되면 무청을 구해 직접 만들어 먹고 있다.



새로운 활력, 높아진 자신감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대화 소재와 대상에 경계가 사라졌다. 직장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번에 새로운 식당에 가봤는데, 들기름으로 볶은 가지볶음이 기가 막히더라”라거나 “어머니가 해주시던 거먹지를 만들어 봤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 같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요리는 나와 세상 사이의 새로운 대화의 창문이 되어주었다.

얼마 전 후배와 만난 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선배님은 요리 얘기와 마라톤 얘기할 때 가장 행복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네요. 요리와 마라톤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의 얘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늘 부족해서 채워야 하는 삶의 상실감을 들여다보며 열등감, 무기력감을 선택했던 생각과 감정 관성을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이가 들며 찾아온 갱춘기는 아내의 요리로부터 '음식 독립선언'을 함으로써 나에게 ‘상실’이 아닌 ‘변화’를 선물했다. 아내에게 의존하던 주방을 내 공간으로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을 스스로 만들어 먹으며 남의 시선에 맞춰졌던 일상의 주도권이 내 것이 되었다. 요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방법이 되었다. 아내와는 요리를 통해 돈독해졌고, 두 아들과는 국 한 그릇, 요리 하나로 관계를 회복하는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를 추가하며, 자신감까지 얻게 되었다. 아직도 음식을 하는 것은 힘들다. 특히 뒷정리가 힘들다. 하지만 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 앞에 앉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행복한 표정. 이것이야말로 갱춘기를 이겨내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자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행복이다. 주방 정복(?)을 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 의존이 아닌 자립을 통해 노년기의 주체적 독립선언문에 한 줄 스토리를 써 나가며 다시금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전 06화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