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경계을 넘어, 노년의 자립을 위한 한 걸음
나이가 들면 ‘갱춘기 ’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변화들이 있다. 젊은 날의 패기와 힘이 쇠하고, 영양제와 약의 복용 개수가 늘어난다. 여기저기 쑤시는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운동을 하여도 쉽게 회복되지 않고 인대가 늘어나 고생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지금까지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묵묵히 달려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약해진 몸과 덩그러니 저녁 시간에 혼밥을 하는 경우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각자의 삶을 찾기위해 흩어져 살게 된 두 아들은 바빠서 연락이 쉽지 않고, 아내의 주장과 목소리는 점차 강해지며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특히 음식과 뒷정리를 할 때면 잔소리를 곁들여 음식을 차려줬다. 자기만 직장 생활하는 거냐... 애들 챙기랴, 신랑 챙기랴 바쁘다.... 밥은 나만 차리냐... 설거지는 누가하냐... 음식물 쓰레기는 그 때 그 때 치워야 냄새가 않난다... 개수대 거름망을 한 번이라도 닦아 본 적이 있느냐... 우유곽은 씻어서 버려야 하는데 왜 그냥 버리냐.... 해도 핀잔을 듣고, 안하면 핀잔의 횟수와 강도는 더 심해졌다.
돌아보면 고맙고 미안해야 할 핀잔의 말들이다. 자신의 힘듦을 이해해 달라는 소리였는데 당시에는 사회 생활에 전념하느라 마음으로 들어주지 못해 후회된다. 결혼 후 남의 입맛과 밥 때에 맞춰 상을 차리고 치운다는 것은 특별한 정성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음식을 하면서 알게되었다. 아내의 경우 가족을 위한 모성애가 반복적인 상차림이 주는 고통을 누르고 특별한 정성으로 승화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내의 희생에 진심 어린 고마움의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가끔은 '집이 이게 뭐냐', '음식을 준비할 때는 정리하면서 해야 깔끔하지 않냐', '국이 짜다', '나는 된 밥을 좋아하는데'라고 말을 했으니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얼마나 얄미웠을까? 노년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과 말을 한다면 정상적인 가정 생활이 어려울 뿐 만 아니라 고립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잠식했다.
주방은 결혼 이후 15년간 아내의 영역이었다. 물론 지금도 아내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장소다. 남자라는 이유로 주방을 멀리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주방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정확히 기억이 없지만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고, 아내의 사회 생활이 바빠지면서 주방을 멀리할 수 없는 무언의 압력이 퇴근 후 나의 발길을 주방으로 이끌었다.
주방 점령 초창기에는 아내가 해 주던 음식 흉내에 급급했다. 칼질, 조리 순서, 식기와 양념의 위치 등 모든 것이 낯설어 허둥지둥 음식을 준비했다. 의욕과 달리 주방은 어지럽혀졌고 음식은 맛있게 되지 않았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해서 물어 물어 식기와 조리 도구, 양념 등을 찾으며 간신히 음식을 해서 먹게 되었다.
고등학생 아들은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학원에 바로 가는 바람에 맛없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늦은 저녁, 퇴근한 아내가 내 음식을 먹고는 '맛있다'라고 고생한 남편을 위한 위로의 억지 표현을 해 줬다.
고마웠지만 이어진 다음 말에 기운을 잃었다. '요리의 완성은 뒷정리야.'라고 말하며 설거지와 개수대 정리가 깔끔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낯선 공간이 주는 어수선함과 아내의 지적이 나의 주방 정복 시작이었고, 내 입맛에 맞는 요리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조금씩 완성되어갔다. 이제는 제법 손도 빠르고 음식도 맛있는 편이라고 평가 받는다.
주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모든 주방 살림살이는 아내의 동선에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이 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주방의 모든 설비가 여자의 평균 키에 맞춰 설계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특히, 설거지 하기에는 낮은 싱크대는 갱춘기의 내 허리 건강에는 악영향을 끼쳤다. 키가 큰 편이라 가재도구가 높은 곳에 있어야 편안하다. 허리를 숙여야만 채소를 꺼낼 수 있는 냉장고의 야채 칸, 한참을 찾아야 보이는 조리 도구의 위치, 내가 좋아하는 식기의 위치, 설거지를 위한 세제의 위치와 수저통의 위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투명하고 투박한 컵은 손 뻗어 꺼내야 하는 높은 그릇장 안쪽에 있었다.
또한 요리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자, 양념장 내 양념의 위치, 국자, 칼, 수저의 위치 등 모든 것이 아내에게 맞춰져 있어 내가 사용하기에는 불편했다. 음식을 하면서 깔끔하게 수납장에 정리되어 있던 조리도구(특히, 칼, 도마, 집게, 가위, 뒤집게 등)들은 점차 주방조리대 위에 배치가 되어갔다. 또한, 자주 쓰는 양념의 위치와 수저의 위치, 자주 쓰는 냄비의 높이와 배치가 내 손에 익숙하게 배치가 되어갔다.
아내는 당시 바빠서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저자는 원하는 대로 주방의 도구와 식재료를 옮겨서 편안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배치는 이후 아내와의 잦은 다툼의 소재가 되었고, 결국, 아내와 주방 용품 배치에 대해 상의하며 서로에게 편한 곳을 찾아 재배치 해야만 했다
본격적인 음식의 시작은 큰 아들 덕분이었다. 큰 아들이 사회복무요원으로 집에서 출퇴근하게 되며 매일 저녁 퇴근 후 6시 30분에는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밥 먹은 식구가 3명으로 늘어나다 보니 본격적으로 주방 조리도구, 식재료, 양념 등의 위치를 내 의지대로 편리한 위치로 재배치 하게 되었다.
큰 아들은 새로 한 밥, 국이 있어야 한다. 반찬은 두 번 꺼낸 것을 손대지 않는 편이다. 편식이 아니라 따끈 따근하게 바로 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대학 생활 내내 집 밥을 먹어보지 못했으니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하는 동안 만이라도 아버지로서 매일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밥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반찬과 국, 반찬을 해 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일단, 식성이 저자와 다른 것이 큰 해결 과제였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도 아들은 '아무거나'라고 답을 줬다. 매일 다른 식단으로 아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식단을 구성해주고자 마음먹었기에 '아무거나'라는 말은 어려운 숙제였다.
또, 식사 양이 저자와 다른 것이 문제였다. 배가 고플 것을 대비해 양을 많이 하면 남아서 결국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기에 항상 고민이 되었다.
식사 시간도 저자와 달라 문제가 되었다. 저자는 7시 전에 식사를 마쳐야 하는데, 아들은 식사 시간이 불규칙했다. 퇴근 후 피곤하다고 8시에 일어나 밥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름 원칙을 정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생각나는 [아빠의 음식]을 만들어 주자.'
큰 아들은 내가 끓여준 '김치 콩나물국'을 유난히 좋아해 맛있게 먹고 국 그릇을 싹 비워줬던 기억이 났다. 큰 아들이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오면 새벽 운동을 다녀와서 어김없이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 놓고, 쪽지도 남겨두었다. '김치 콩나물국 먹고, 해장해. 3분 더 데워서 먹어^^'. 퇴근 후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국이 얼마나 줄어 들었을까 궁금했다. 줄어 들었다. 기뻤다. 내 생각대로 기억에 남는 '아빠의 음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사 양은 되도록 적게 했다. 아내와 늘 다투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내는 배불리 먹으려면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나는 음식이 남아 냉장고에 들어가면 안 먹고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늘 의견이 대립 됐다. 하지만, 아내가 늦게 퇴근하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음식의 양을 적게했다. 부족하여 출출함은 과일로 보충했다.
식사 시간이 다른 점은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을 포기하니 해결이 됐다. 큰 아들과 소통하여 따로 먹는 것을 합의했다. 사실, 아들은 밥 먹으며 핸드폰을 보는데 집중했다. 나는 궁금한 것을 묻는 형태라 동상이몽의 식사 시간이 불편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먹고 싶은 것을 7시 이전에 간단히 먹고 아들이 먹고 싶어하는 요리를 따로 챙겨주니, 아들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하는 듯 보였다. 함께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니 아들도 편하고 나도 편안해졌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두 번 밥상을 차리는 일이 힘이 들었다. 아내의 고마움이 또 생각나는 대목이다.
주방을 온전히 내 영역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부터 서서히 내 영역의 한 곳으로 확장해야 한다. 노년기로 갈 수록 까다로워 지는 내 입맛은 내 손으로 직접할 조리 할 때 맞출 수 있다. 또한, 가족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함으로써 화목해지는 자리와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서 인정 받는 횟수가 늘어나 고독하지 않은 노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지금까지 남편이 주방을 정복해주길 늘 소망하고 있었다. 이제 그 동안 소홀했던 아내의 소망을 들어줘야할 때다.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시간과 식재료에 정성이 한 스푼 얹어져 나만의 의미가 부여된 음식을 만드는 힘이 생긴 것이다. 또한, 노년의 고독한 삶을 견뎌내고, 건강한 일상을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갱춘기의 남자들이여, 주방을 내 것으로 만들어 노년기 독립선언(아내에게 의존했던 생활 방식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버킷리스트를 한 줄 더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