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2'

낯선 상황에서는 힘을 빼자.

최근에 가슴 떨려 본 일이 있는가?


그냥 어느 날이었다. KSLS 연맹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사격 연습을 무료로 해준다는 공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수 많은 공문은 스쳐 지나가는데 유독 이 문서 만은 지나칠 수 없었다. 왜 눈에 들어왔을까? 아마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에 무료라는 단어가 주는 소비적 감정에 충동질을 했을 것이다. 저자 외에도 관심있는 교원이 있어 재미삼아 신청했다. 연습하러 간 날이다. 아직은 대중화 되지 않은 KSLS 사격장은 다소 썰렁했다. 기초 강의 후 사격장에 들어섰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격 사대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옆 동료에게 들릴까봐 호흡을 가다듬느라 혼났다. 연수 받은 대로 잘 쏘고 싶었으나 손동작, 호흡, 시선, 자세 등은 저자가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다. 제각기 움직였다. 어느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풋풋했다. 실소가 났다. 그냥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지만 50분이라는 시간은 나도 모르게 지나갔다. 오롯이 가늠자와 과녁과 나의 호흡에 집중한 50분이다. 사대에 입장할 때의 감정은 사라졌다. 잘 쏴서 동료와 코치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욕구 보다는 사격에 집중하며 있는 그대로 재미를 경험하는 이 순간이 좋았다. 단순하고 휘발성이 강한 호기심인줄 알았는데 더 큰 일을 벌이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7월 26일(토) 대한민국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첫 레이저 공기권총 사격대회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회 전 총 4회의 사격 연습 기회가 부여되었다. 그렇게 나의 갱년기와 오춘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의 낯선 경험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연습: 기적의 91점, 조력자의 마법


사격장에 들어서는 순간 지난 번 보다 훨씬 안정감이 느껴졌다. 벌써 익숙해졌나? 하지만, 금방 감정이 요동쳤다. 바로 옆자리에 성인 3명이 총을 쏴댔기 때문이다. 그 총소리가 온몸의 승부욕 세포를 깨웠다. 가늠자, 가늠쇠, 손 동작, 호흡 등 서툰 자세로 과녁을 겨냥하자 수능 시험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긴장감의 첫 발은 과녁을 한참 벗어났지만,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그때, 나긋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 코치였다. "총을 너무 꽉 쥐고 계세요. 오른손에 힘을 빼시고, 왼손 검지로 방아쇠울을 살짝 받쳐보세요. 균형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녀는 내 긴장과 서툰 습관을 단 한 번의 사격 장면으로 보고 꿰뚫어 본 듯했다. 그녀의 말대로 하자 거짓말처럼 총구의 떨림이 적어지고 안정됐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차분함이 느껴졌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과녁을 확인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7번의 연습 중 5번 째 사격(총 10발의 합산점)이 무려 91점을 기록한 것이다! 얼떨떨한 나를 보며 코치는 환하게 웃었다. "보세요, 할 수 있잖아요!" 갱춘기로 혼란스럽고 무기력했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91점은 단순한 점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명이었고, 잊고 지냈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회복의 신호탄이었다. 훌륭한 조력자는 이렇듯 개인의 습관, 감정, 생각까지 읽어내어 최적의 맞춤형 방법을 제시하는 전문가였다. 나는 교원으로서 학생과 학부모가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조력자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회한을 안고 사격장을 나섰다.


두 번째 연습: 어설픈 도전이 주는 갱춘기의 나락, 깊어지는 좌절


첫 연습의 최고 점수 91점은 꿈이었을까. 두 번째 사격장은 발걸음부터 무거웠다. 그날의 기적이 단순한 우연일까 하는 불안감과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예상대로, 첫 발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4점, 6점... 그때, 남자 코치가 다가와 말했다. "한 번은 두 손으로 쏘고, 한 번은 한 손으로 쏴 보세요. 다양한 자세를 익혀야 실전에서 유용합니다."

그의 말에 따라 두 손으로 쏘아봤지만, 첫 연습 때의 감은 잡히지 않았다. 점수는 70점대. 다음은 한 손 사격. 총구가 심하게 흔들리고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온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힘을 빼면 더더욱 가늠자가 흔들렸다. 그래도 가늠자와 가늠쇠에 집중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총소리가 귓가를 때릴 때마다 점수는 80점대, 70점대로 떨어졌다. 검정 과녁에 맞히는 것조차 어려웠다. 호흡이 널 뛰듯 요동치는 바람에 손 떨림은 더욱 심했다. 가로로 흔들리기도 하고, 세로로 흔들리기도 했다. 과녁에 십자가를 그려놓고 있었다. 챙피했다. 조력자의 조언은 도움이 아닌 무력감을 한 스푼 얹어주었을 뿐이라고 원망했다.

점수판에 찍힌 처참한 숫자들은 내 눈을 찔렀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공포였다. 91점은 온데 간데 없었고, 오히려 어설픈 자세 교정이 두 손 사격의 점수마저 형편 없이 떨어뜨렸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허탈감에 총을 내려놓았다.갱년기의 무기력함과 오춘기의 파도치는 감정선이 다시 거대한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실망하지도 않았을 텐데. 사격이 탈출의 해방구가 될 줄 알았건만, 더 깊은 좌절감만 안겨주었다.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듯, 한없이 우울한 기운이 나를 감싸 안았다. 진정한 조력자는 기술을 넘어 한 개인의 심리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낯선 도전과 어설픈 기대감이 갱춘기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 연습: 흔들림 속의 균형, 방향 전환의 기점, 호흡!


세 번째 연습, 나는 좌절감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인정의 욕구와 승부욕은 나를 더 괴롭혔다. 괜히 사격이라는 낯선 도전을 시작했다는 회한도 들었다. 갱춘기의 감정 기복은 격렬했고, 우울함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이런 나를 들여다 보고 마주 해야 하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그래서 사격장을 회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동료들의 노력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격장에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감정관성은 고장난 수도꼭지 처럼 멈추지 않고 예상대로 흘러갔다. 멈추는 순간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성은 작동하지 않았다. 무력감이라는 감정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총을 드는 순간에도 손끝이 떨렸고 과녁은 흐렸다. 1분 이상을 과녁을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호흡은 멈췄지만 손 떨림은 점점 심해졌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결국 총구를 거치대에 내려놓았다. 한심함을 뒤로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눈에 보이는 것 부터 끊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 2, 3, 4, ...... 16, 17, 18, 19, 20! 내 안의 호흡에 집중했다. 깊이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숨결 하나하나에 이성을 실었다. 그 순간 무력감의 감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내 감정을 알아차렸고 제동 장치가 작동했다. 주변을 보지 않고 과녁만 응시했다. 천천히 총구를 과녁 위로 향했다 내리며 숫자를 셌다. 과녁에 가늠자와 가늠쇠가 일치 되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그 자세로 방아소울을 받치고 있던 왼손 검지 손가락에 힘을 줘서 총열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오른손은 쭉 뻗어 총열과 가늠쇠와 가늠자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도록 1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걸려있던 오른손 검지를 부드럽게 당겼다. '탕!' 고요했다. 발사 후 총열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치대에 내려놨다. 점수판을 확인했다. 눈을 의심했다. 10.3점을 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호흡에 집중할수록 외적인 혼란은 흐려지고 내면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탕!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과녁의 점수가 아닌, 내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호흡하고 방아쇠를 당겼는지에 집중했다. 점수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더 높은 점수를 얻는 부수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90점 이상을 3번이나 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렇게 진정한 나 자신의 호흡을 만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흔들리던 손이 안정되었고, 조준점도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점수가 드라마틱하게 오르진 않았지만, 갱년기의 감정 기복과 우울함은 잠시 잊고, 오직 숨소리와 총소리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순간을 경험했다. 잊고 싶지 않아 기억 저장소에 저장해 두고 싶었다. 사격은 내면의 파도와 싸우는 동시에, 그 속에서 나 자신만의 안정된 호흡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사격장에 오기 전의 감정은 멈췄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 관성이 시작되었다. 지금 잠시 눈에 보이는 세상과 욕심을 끊어내고 내 안의 호흡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네 번째 연습: 마침내, 삶의 무게를 내려놓다


세 번째 연습의 자신감이 마지막 네 번째 연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흥분된 상태로 사격장으로 향했다. 대회 전 마지막 연습이었다. 다가오는 토요일 대회(이틀 남았다.)에 참여한다. 적당한 긴장감이 나를 기분좋게 만들었다. 세 번째의 기억을 떠올리며 호흡과 과녁에 집중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얹었다. 오늘 대회 전 마지막 사격 연습의 목적은 몸에서 힘을 빼는 것이었다. 지난 세 번의 사격 연습 후 오른 팔꿈치에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총열과 1자를 만들어야 흔들리지 않고 사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몸에 무리를 준 듯했다. 총을 들고 온몸에서 힘이 뺐다. 배가고픈 걸인의 등과 배가 만든 S자처럼 휘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총의 손잡이를 꽉 쥐었던 어깨와 팔의 긴장마저 풀었다. 이완된 내 몸에 집중하는 순간 욕심과 무력감도 빠져 나가는 것 같으며 홀가분한 생각이 들었다. 아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50년 이상 내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와 책임감, 압박감에 의해 경직돼있던 나와 완전히 다른 나를 만나고있 었다.

그 이후 총열과 총구는 더 안정되었고 시야는 더욱 맑아졌다. 이 기분으로 잘 쏴서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올리는 것도 중요했다.하지만, 점수는 좋지 않았다. 오늘은 점수가 목적이 아니었지만, 점수라는 숫자가 만들어 준 승부욕과 인정의 욕구는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에 힘을 빼고 나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10발을 모두 쏠 수 있는 견뎌내는 힘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되찾았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흔들림 없이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내 몸에 대한 믿음,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안정감을 주었다. 사격이라는 새로운 도전은 내게 호흡을 다시 정리하며 갱춘기 감정관성을 멈추고 오늘을 견뎌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낯선 것에 익숙해지고,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는 용기. 그렇게 나는 건강하게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확신과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며 지금을 고통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KSLS 인천 대회 출전은 어쩌면 사소한 도전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갱년기와 오춘기를 넘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도전의 시작이었다. 총구를 겨눠 과녁을 맞추듯, 나의 삶 또한 견뎌내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리라 다짐한다. 갱춘기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이여, 과녁은 있어도 총이 없는 오늘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도 인생의 어느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당신만의 과녁을 찾아 용기 있게 겨눠볼 총을 지금부터 찾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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