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래도 죽음보다는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혹시 당신에게 '죽음'이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나?
50대의 평온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라곤 찾아볼 수 없던 어느 날, 나는 가장 불길하면서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니요, 단순히 악몽이라 치부하기엔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했다. 바로, 내가 숨 쉬지 못하고 죽어가는 꿈이었다.
업무 스트레스도 없고, 하루하루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던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꿈의 잔상은 마치 짙은 안개처럼 현실을 덮쳤다.
꿈속에서 나는 정처 없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뿌옇고 습한 안개로 뒤덮여, 사물의 윤곽조차 희미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걷던 그때, 안개가 턱, 하고 내 입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필사적으로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려 했지만, 기도는 닫힌 듯 답답했다. 공포에 질려 괴로워하며 서서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고, 주변의 안개는 더욱 짙고 무겁게 느껴졌다. 온몸의 감각이 희미해지던 찰나, 문득 나는 제3자의 시선(이방인)으로 나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온 건가?'
순간적인 착각과 함께, 신기하게도 평온함이 밀려왔다. 격렬했던 고통이 잦아들고, 마치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낯선 안도감. 바로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생각과 감정의 틈이 벌어진 것이다. 그 틈으로 무엇이 채워졌을까?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더욱 기이한 것은, 심장은 두근대지 않는데, 가슴이 미칠 듯이 답답했다는 사실이다. 꿈속의 짙은 안개가 현실의 방안까지 따라 들어온 것만 같았다. 당장 이 공간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거실로 나섰지만,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간단히 옷을 차려입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 걸었다. 새벽 공기 속에는 웬일인지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꿈속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불안했지만, 천천히 걸으며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그 단순한 생명의 행위를 30분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감이 찾아왔고,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사그라들었다. 혹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며 집으로 올라왔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죽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꿈을 꾸는 듯한 편안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다만, 삶과 죽음이 완전히 이별하는 바로 그 순간만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뿐이고 말이다.
생각과 감정의 틈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비집고 들어찼다.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어쩌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살아있음'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삶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통로라는 생각이 든다. 깨어나서 당신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부여된 시간인 것처럼, 이 부여된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시작하는 움직임으로, 당신은 어떤 작은 행동을 시작하는가? 내
나는 나의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한 자작시 한편을 소개한다.
[꽃이 피어나고]
아주 평범한 날 새벽에 눈을 뜨고 나서 지은 시다. 눈은 떴으나 일어나기 싫어 발가락만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내 모르게 나만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이었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 살아있지 않았다면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발가락을 움직이며 당장 할 일과 오늘 할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나만의 일정이 발가락 꼼지락 거림에서 태동이 되었다는 비유가 웃겼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고, 살아 있음이 그저 감사한데 발가락은 그 첫 신호를 내가 느낄 수 있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얼른 일어나 아침 루틴대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움직임으로 시작하며 살아있음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음에 감사함을 담은 시다.
당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시작하겠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온 우리는, 숨 쉬는 이 모든 순간이 기적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