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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틈에서 자라는 것 // 아침과 저녁 루틴의 틈

14화. 갱춘기, 마음먹은 대로 삶 속에 실천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틈에서 자라는 것 : 갱춘기(更春期), 생각의 허기를 실천으로 채우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가, 식물들이 내뱉는 초록의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거실을 채운다. 시계는 밤 10시를 향해 가지만,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비로소 나를 위한 진짜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의 시간은 전쟁터다. 업무라는 루틴과 관계라는 엉킨 실타래 속에서 나는 병사처럼 혹은 배우처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역할의 가면을 벗고 온전한 ‘생활인’으로 돌아온다. 이 전환의 시간, 아침과 저녁 사이의 그 미묘한 ‘틈’에서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관성의 법칙, 멈추지 않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오늘도 나는 몸을 움직였다.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본능처럼 화분에 물을 주었다. 흙냄새가 훅 끼쳐 오자 비로소 회사에서의 긴장이 풀린다. 곧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땀을 흘린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근육이 팽팽해지는 느낌,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부엌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부대찌개 냄새가 가득하다. 아내와 마주 앉아 국물을 떠넘기는 이 소박한 저녁 식사.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린다.


나는 이것을 ‘관성(Inertia)’이라 부르기로 했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한다. 사람의 마음도, 생활도 그렇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몸을 눕히는 순간, 그 관성은 멈춤을 향해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독하게 움직인다. 피곤해도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깊은 잠이 오고, 그 잠의 밀도가 내일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생각의 포만감 대신 실천의 허기를 채우다


문득,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예전의 나는 생각만 많은 사람이었다. _'해야 하는데', '언젠가는'_이라는 단어들 속에 파묻혀 정작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던 나. 그런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생각과 행동 사이의 틈, 그 벌어진 틈새에서 나는 과거에 지었던 시(詩) 한 편이 떠올라 소개한다.



마음먹다




오늘은...


내일은...




새롭게 결심한다.


마음속으로 결심이 들어왔다.


마음을 먹은 것이다.




생각을 먹으면 먹통


마음을 먹으면 실천




실천으로 배부른


오늘.



그렇다. '생각'을 먹으면 체한 듯 속이 답답해지는 '먹통'이 되지만, '마음'을 먹으면 손발이 움직이는 '실천'이 된다. 나는 오늘 생각으로 배를 채우는 대신, 실천으로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갱춘기를 건너다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를 사춘기에 빗대어 '오춘기'라거나 갱년기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갱춘기(更春期, 다시 봄)'라 부르고 있다. 이 시기의 불안과 흔들림은 생각이 많아서 오는 병이다. 하지만 나는 루틴이라는 단단한 닻을 내렸다. 매일 반복되는 식물 돌보기, 운동, 요리, 그리고 글쓰기. 이 사소해 보이는 행위들이 모여 하루를 완성하고, 그 완성된 하루가 쌓여 나를 조금씩 성장시킨다.


오늘 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붙들어 맨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내 삶의 관찰자이자 기록자가 된다. 루틴을 수행하며 흘린 땀과 아내와 나눈 웃음, 그리고 식물들이 자라나는 그 틈새에서 나 또한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마음의 충족감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임 끝에, 실천의 끝자락에 맺히는 땀방울 같은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갱춘기라는 흔들리는 다리 위를, 루틴이라는 정직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건너고 있다. 생각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실천으로 배부른 오늘, 참 달다.


[틈에서 자라는 것]
2018년. 다리 근력을 키우기 위해 아침에는 마라톤을 하고 저녁에는 사이클을 타며 훈련에 몰입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저녁에 술자리나 모임이 많아서 사이클을 매일 타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음주 후 사이클을 타는 것은 더더욱 위험했기에 사이클을 탈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저녁에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은 마라톤을 하기 힘들었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데다가 많이 마시는 편이다. 그래서 숙취로 고생하는 날이 많았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출근 후 근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과 저녁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관계 맺기에 주력했던 결과는 질병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매일의 루틴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나와의 약속과 내면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지었던 시였다. 그리고 루틴이 만들어졌다.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일들이 내 루틴이 되었고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그 루틴의 틈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이 형성되었으며 갱춘기를 견뎌내는 자양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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