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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틈에서 자라는 것//같은 현상을대하는 이중시선

16화. 행복과 불행 중 무엇에 중점을 둘 것인가?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이른 새벽부터 몸이 알람처럼 울렸다. 오늘은 내가 속한 기관의 '뛰걷쓰' 동아리를 주관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 회원들이 송도에 있는 달빛공원에서 첫 마라톤 도전을 하는 날이라, 리더로서 은근한 긴장감이 나를 일찍 깨웠다.


기대와 달리 모인 인원은 A, B, C, 그리고 나, 단 네 명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밖에 안 모였나?' 하는 실망감에 잠을 설친 내가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마라톤 리더이자, 직위상 '과장'으로서 나만의 내적 자발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때로는 (남들이 보기에) 내 자랑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보여주는 것이, 나 외의 사람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착각'이 어쩌면 내 삶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착각이다. 그에 따른 내 멋대로의 해석은 이랬다. 'A(육아로 늘 힘들어했다.)에게는 육아 시간으로부터 잠시 해방(오늘을 핑계로 남편에게 육아를 맡김)되어 봄날의 따스함을 만끽하는 귀한 시간이었을 거야.', 'B(승진을 해야 하는 경계에 서 있어 근평이 필요한 상황)에게는 과장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평소 챙겨야 했던 근평(근무평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였을 거고.', 'C(주변 친구들이 마라톤을 하는데 자신이 없어 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게는 마라토너의 체력과 속도라는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몸소 경험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 경험이 혹시나 '나도 노력하면!'이라는 동력으로 작용해, 건강을 챙기고 살을 뺄 수 있는 기회로 작동한다면, 이 또한 선한 영향이겠지?'


물론, 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내 생각일 뿐이었다. 상대방들은 억지로 오늘 모임에 참석했을 수도 있고,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각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리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 마지막 바람은 이렇다. '모두가 각기 충족하고 싶었던 욕구를 채웠던 자리였다면 만족한다.'


나는 솔직히 내 욕구를 모두 충족했다. C의 놀란 눈빛을 통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마라톤 실력을 완벽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직원들 대상으로 강의하며 말했던 나의 실력이 사실임을 입증해 준 것 같아 나는 만족한다.


다만, 상대방이 정말 그렇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 이런 착각이 또 나의 '약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오늘 아침, 나는 나만의 착각 속에서 만족감을 얻었지만, 문득 이 '착각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며 이전에 지었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양면


어둠이

빼앗아 간 것은

시각


어둠이

되찾아 준 것은

빛과

생각


'어둠'이 시각을 빼앗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눈앞의 현실이 아닌 내면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착각'도 마찬가지다. 현실과의 괴리라는 약점 뒤에는, 나 스스로를 움직이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믿는 강력한 동력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혹시 오늘, '선한 착각'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아니면 그 착각이 깨지며 씁쓸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을까? 늘 함께 공존하는 행복과 불행의 경계에서 불행보다는 행복을 선택하는 현명한 지혜를 갖길 바란다.


[틈에서 자라는 것]
2018년 새벽 달빛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가로등도 어두웠다. 당시에는 마라톤을 즐기는 인구가 적어서 혼자서 달리며 내면의 생각과 마주하는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어두워 뛰는 내내 불편했다. 그 순간 하늘의 별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 어두우니 별빛이 선명하게 잘 보이는구나.' 뛰는 걸음은 우뚝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시 한 편을 뚝딱 완성했다. 바로 위의 '양면'이라는 시였다.
선택의 기로인 경계에 섰을 때 불행과 행복 중 나는 무엇에 집중했는지 반성했다.
어둠은 빛과 생각을 주었음에도 시각을 빼앗아 갔다고 두려워하고 불평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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