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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틈에서 자라는 것//의견의 균열과 다름의 틈

13화. 진짜 답 없는, 유연한 우리 '교육수다'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진짜 답 없는, 유연한 우리 '교육수다' 모임'


'교육수다' 모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모였지만, 우리는 애초에 '진짜 답 없는 모임'이었다. 모두가 다른 성향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 애써 그 다름 때문에 만났고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의 지식과 지혜를 재구성하려 했던 지난한 시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 리더이고 지성인이다. 교원의 권위와 리더십이라는 묵직한 화두 앞에서, 각자의 균열을 메우기는커녕 그 틈을 더 벌리기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A는 쉼 없이 말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쉬이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초등 교직의 특징처럼 여러 예시와 설명을 덧대어 만연하게 풀어나갔다. 듣는 이의 답답함보다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었다. 한편, B는 최근 학교에서 발생한 의견 다툼과 대립의 경험이 주는 상처 탓에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과 말투로 교원이라는 역할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함께 교권에 대한 책을 만들고 교원의 권위를 되찾을 방안과 학교조직문화를 진단하는 새로운 시선을 협의하려던 처음의 목표는, 그 순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들이 달랐고, 무엇보다 경험했던 감정선이 달랐다. 정책이나 이론의 차이가 아니라, 피부로 겪어낸 상처의 깊이가 달랐기에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내며 교육현장에서 경험한 답답함을 있는 그대로 솔직 담백하게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해답 없는 감정 넋두리였다. 답답했다. 말 그대로 '답답해서' 입을 열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맞춰갈까? 고민이 되었다.


그때, A가 던진 '속풀이' 제안에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C도, D도 고개를 끄덕였다. 교원의 권위나 리더십이라는 거대 담론을 논하기 전에, 서로 다른 경험을 끌어안고 있는 각자의 마음부터 먼저 풀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다음 모임은 송도에서의 1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내가 주관할 다음 모임은, 이제 '토론에 또 토론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굳어졌다. 서로 다른 대화들을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려는 지난한 시도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이 '교육수다' 모임은 목적하였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은 크다. 교원의 권위와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진단, 학생, 학부모와의 교육동행 방안, 교육 관련 책 만들기 등의 숙제는 결국 각자의 마음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스토리'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바로 우리가 찾던 '진짜 답'이 아닐까라고 위안해 본다.


제도적인 어려움과 교원의 권위 회복을 위한 거창한 방안을 수립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해답 없는 대화, 갈 곳 잃은 감정선들이 부딪히고 맴도는 이 '균열의 틈'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적어도 우리는 현재의 급격한 교육현장의 변화 속에서 교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계기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의 '교육수다'모임은 '진짜 답은 없는' 모임이 맞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솔직하고, 이보다 더 유연하게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그 답 없음이야말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일 것이며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을 장착하는 계기일 것이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는 유연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유일한 권위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다른 예전에 지었던 자작시 한 편이 떠올랐다.



진짜 답



야!

너!

진짜 답 없다.


이보다

더 유연한 삶을

사는 이가 있을까?




[틈에서 자라는 것]
2019년 TV 드라마를 보던 중 서로의 입장이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눴던 대화로 기억한다. 남자 배우의 말에 여자 배우가 말했다. '야! 너! 진짜 답 없다.' 두 배우는 서로 남매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여자 배우가 누나였고, 남자 배우가 동생이었다. 누나가 동생의 철없는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남자 동생을 꾸짖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과 감정 패턴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동일한 지점에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후회하고 반성해도 아마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면 동일한 지점에서 실수를 할 확률이 높다. 인간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 닮아있다.
세상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다른 시선과 다른 세계관이 모여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조금씩 변한다. 다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맴돌 뿐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오히려 퇴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아마도 답이 있으면 그 답에 만족하며 더 나은 해답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를 '행복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답 없는 세상에서 해답을 찾아가며 행복한 바보로부터 탈출하는 삶의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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