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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틈에서 자라는 것//수술대위 자식의 부모 사랑

12화. 다섯 해를 견뎌온 아들의 손가락을 잇다

2025년 11월 5일 수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11월 4일 화요일, 다섯 해의 고통을 끌어안은 날이었다. 아내의 손에 이끌려 둘째 아들이 서울대 병원 침상에 눕던 그 순간까지, 우리는 2020년 2월의 그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전복된 광역버스의 잔해, 깨진 유리조각이 아들의 오른손 신경을 모조리 끊어버린 그 대형 사고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사고 직후, 119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아들과 부상과 사고 관련 통화로 불안한 목소리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눈이 미친 듯이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눈 속을 뚫고 달려간 안양 병원까지 급한 내 마음과 달리 미끄러운 길은 이동을 더디게 만들었다. 불안감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119 구급대 차량에서 상처를 잔뜩 동여맨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 속상함, 안심, 고통 같은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내리는 폭설보다 더 심하게 휘몰아치며 나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내 생각과 감정에 틈이 생기던 그 찰나, 나는 오직 아들이 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누구를 원망하고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그때만큼은 다음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터져 나왔다.


코로나 시국, 아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고열이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코로나 의심 환자’로 분류되었다. 인근에 음압병동이 없으니 응급실 출입이 불가능했다. 도로는 통제될 정도의 폭설이었는데, 우리는 안양에서 검단까지 다시 달려야 했다. 자칫 2차 사고로 아들의 환부가 더 심각해질까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조급했다. 추운데도 땀이 났다. 무사히 도착한 검단 탑병원 음압병동에 입원해서 하루 동안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은 지옥 같았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곧바로 2시간의 긴 수술을 받았지만, 주치의는 유리 파편 모두를 제거하지 못했고 끊어진 신경도 모두 연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후 부천, 안산 그리고 지인이 추천한 김포 유엔제이병원까지 전전하며 신경 연결 수술과 유리 파편 제거 수술을 다시 받았다.


하지만,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검지 손가락의 신경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감각 없는 상태로 살아온 다섯 해였다. 광역버스 보험팀과 합의하는 과정 중, 아들은 신경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내가 지금 셀 수 없이 많은 임플란트 수술로 고생하고 있는 것처럼, 아들은 지난 5년간 자신의 고통을 뒷전으로 미룬 채 자신의 일과 지인들과의 관계에 매진하며 살았다. 오늘, 5년 만에 이 병원을 다시 찾은 것은 그 멈춰 있던 시간을 비로소 움직이기로 한 날이었다.

수술은 아들의 발에 있는 신경을 끊어 손가락의 끊어진 신경에 이어 붙이는 것이었다. 대략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얼마나 아플까. 지난 5년간 감각 없이 살았을 아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리고 또 아렸다.

의사들의 습관적인 말, '수술로 인한 후유증은… 신경이 완전히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신경종이 생길 수 있어요'라는 말은 늘상 의사입장으로 말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에 따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리는 말은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의료 행위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라는 전문가를 신뢰하기에,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 수술 대기실에 앉아서 전신마취의 고통과 다투는 아들의 수술이 잘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 동안 살아온 내 삶에서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

자식과 관련하여 지었던 자작시 한 편이 문득 떠올라 여기 함께 적어본다.



무엇이 중한고



두부를 만드는 장인이 말하길


"두부를 완성할 때 까지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해요."


자식을 키울 때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을까?


[틈에서 자라나는 것]
2018년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두부 장인을 소개했다. 새벽부터 시작해서 늦은 저녁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항상 웃는 얼굴,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하는 모습을 시청했다. 영상속에서 삶을 아름답게 견뎌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단점인 삶의 척박성 속에서 인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노동의 신성함 그리고 존재 자체의 존엄함을 장면과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여 시청자의 감동과 그 이면의 불편함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목도 '인간 극장'이다.
다른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게 일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며 흥미롭게 시청했다. 인터뷰 중 "두부를 완성할 때 까지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해요."라고 말하며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두부를 만들고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에 정작 본인의 자식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있는 상상이 뇌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이방인의 시각이 발동했다. 그리고 잠시 감동과 흥미가 멈춰지고 그 멈춤 틈에서 노동과 자본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난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시선이 불쑥 튀어나왔다.
오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며, 그 동안 자식을 믿고 지지하고 사랑한다고 생각과 말만 하며 살았던 모습을 되돌아 반성하게 되었다. 진정한 지지와 믿음은 내 안만 있었지 아들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균열의 틈에서 깨어났다. 앞으로 아들을 포함한 가족을 내 삶의 순위에서 가장 첫 번째로 꼽아야 함을 곱씹으며 아들의 신경이 되살아나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자주 하지 못한 말을 오늘에야 전합니다.


'아들~ 여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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