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덕적도 가는 중입니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어제는 술과 사람에 취해 덕적도 출장마저 까맣게 잊었던 밤이었다. 임플란트 치료가 진행 중이라는 현실적인 제동 장치도, 내일 아침 배를 타야 한다는 이성적인 경고음도, 기분 좋은 분위기 앞에 무력했다. 오랜만에 직원들과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는 이야기 한 스푼과 맛있는 선어회가 곁들여지자, 술의 임계치를 넘겨 끊임없이 마셔댔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삶의 방향이, 어쩌면 어제의 과음과 유사한지도 모르겠다.
아침, 불편한 속을 라면 한 그릇으로 달래고 흔들리는 배에 몸을 실었을 때, 모든 것이 편안해지며 생각과 감정에 내 내면으로 향했다. 편안함이라는 균열은 나의 생각과 감정 관성을 멈추게 하며 주변의 풍경을 '보는' 계기로 작동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마주한 바다와 섬, 그리고 나는 하나가 되었다. 배가 바다가 내어주는 길 위를 흔들리며 달리는 동안, 시선은 한없이 유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내는 섬에 머물렀다. 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물고기, 배, 바람, 그리고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낸다. 그리고는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로 흘려보낸다. 그 유연함은 견뎌냄이 아니라, 수용을 통한 승화로 열반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바다가 그어놓은 수평선이 섬을 날카롭게 잘라놓았음에도, 섬은 아파하지 않고 그 고통마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승화한다는 점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관계를 만들고, 우리는 보이는 대로 그 풍경을 해석할 뿐이다. 나의 내부에서 어제의 일탈과 오늘의 숙취, 그리고 출장길의 고요함이 만들어낸 생각과 감정의 균열. 이 균열을 메우고 무시하고 기존의 생각과 감정대로 나아가려 하지만, 섬의 태도는 달랐다. 섬은 잘린 고통마저 아름다운 풍경으로 승화하여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했다.
덕적도로 가는 배 위에서 생각과 감정 균열이 생기며 떠올린 자작시 한 편을 소개하겠다.
우리의 삶 역시 무수히 많은 목표와 의지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때로는 의도치 않은 회식과 숙취, 그리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불편함이 만들어낸 균열이 필요하다. 그 균열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유연함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발견한다. 앞으로의 전진만큼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파도와 흔들림에 '온전히 몸을 싣는' 용기 있는 수용의 태도이다. 어제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강박에서 벗어나, 오늘은 있는 그대로의 바다와 배와 수평선과 섬, 그리고 숙취의 불편함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틈에서 자라나는 것]
인천교육연수원 부장으로 재직하며 아침 저녁으로 인천대교를 건너는 행운을 얻었다. 매일 마주하는 바닷바람과 배와 포말과 섬으로 향하는 버스는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는 풍경이었다. 2020년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동력이 끊어진 배가 움직이지 못하고 파도에 흔들리는 모습을 눈에 들어왔다. 동력이 끊겼으니 파도에 몸을 맡기고 위 아래로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어디로 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배의 입장에서는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가기 보다는 파도와 바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며 즐기는 듯 보였다. 생각과 감정 관성에 균열이 생기며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즐거움의 지혜를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으로 유지하고 싶으나 가끔은 무동력 배처럼 흔들리고만 있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