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 vs 둔함, 어떤 것이 더 나을까?
나는 어떤 사람에 속할까?
20대 중반까지 나는 나 자신을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둔한 것 같지는 않고, 눈치가 없는 편도 아니며,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랬던 것 같다.
예민한 가시를 타인에게 많이 들이대지는 않았다.
다만 나 자신에게 향했을 뿐.
그러다 20대 후반 직장 친구와 함께 패키지로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서유럽 10박 12일 일정으로. 당시 긴 휴가였기에 직장에 미리 이야기를 하고 출발했다.
솔직히 걱정했다. 나는 예민한데, 거기 가서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잠은 제대로 잘까 말이다.
음... 결론부터 말하지만 나는 아주 잘 적응했다. (응? 나 예민한 거 아니었어?)
현지 밥도 잘 먹었고, 와인, 맥주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잠도 아주 푹 잘 잤다.
그래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 살이 조금 쪄 있었다. 워낙 잘 먹고 잘 자서....
예민한 건 내가 아니라 친구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단다. 옆에서 내가 엄청 잘 자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했다면서...
잠결에 무슨 소리가 나면 친구는 일어나는데 나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잤단다.
(음. 이 얘기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는 살이 쏙 빠졌다.
그때는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둔한가? 느낀 적이 한 번 더 있다.
나는 원래 타인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분위기나 눈치를 잘 살피는 편이다. (지금은 그게 피곤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런데 그날따라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친구가 어떤 후배와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나 보다.
그 둘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후배가 나에게 말을 많이 시켜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친구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어서 나에게 일부러 말을 더 시킨 거였단다.
나를 제외하고 같이 밥을 먹던 3~4명 정도는 점심을 먹는 자리가 숨 막히게 답답했다고 했다.
아... 왜 나는 전혀 몰랐지? 그 일로 친구는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라고 이야기했다.
음... 솔직히 좀 억울하긴 했지만,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느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에 더 가까울까?
생각해 보면 딱 하나의 모습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내 모습이 여러 가지로 달라지니 말이다.
이분법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도 든다.
누구다 다 예민함과 둔함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이 더 많이 발현되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떤 것에서는 둔할 때도 있고, 둔한 사람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있을 테니.
가끔 '이게 내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의 자아도 튀어나오는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덧씌운 이미지가 나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치열하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쉽게 선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아직 나를 하나로 정의하지 못하겠다.
나는 지금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이것이 언제 끝날지, 끝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