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다음 날.
길을 걸으면 여기저기 지렁이가 보인다.
아직 몸이 촉촉한 것도 있지만 벌써 햇살에 말라버린 것도 있다.
아직 살아있는 지렁이는 두 아들이 나뭇가지로 집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축축한 풀로 데려다준다.
이미 말라버린 애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된다.
조금만 걷다 보면 지렁이 다섯 마리 정도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지렁이가 많은 동네에 살고 있음을 이럴 때 실감한다.
지금은 지렁이가 보여도 이렇게 태연하게 지나가지만 이사 와서 초반엔 그렇지 못했다.
너무 놀랬다.
앗! 지렁이다!! 소리 지르며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지렁이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 혼자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왜냐면 이렇게 지렁이를 제대로 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메뚜기, 개구리 등을 본 기억은 있는데 지렁이에 관한 기억은 없다.
부산에 살 때도 직장 생활을 위해 서울 생활을 할 때도 지렁이는 보지 못했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흐릿하게나마 남아있는 기억조차 없다.
그런데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지렁이를 틈만 나면 만났다.
처음엔 약간 징그럽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궁금해졌다.
여긴 왜 이렇게 지렁이들이 많지?
이전까지 제대로 보지 못해 관심이 없던 대상이 막상 자주 보니까 궁금해진 거다.
아이들에게 먼저 물어본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두 아들이기에 나보다 아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다.
엄마는 어쩜 그런 것도 모르냐면서 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럴 때마다 이야기한다. 누구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거라고. 어른도 같이 배우는 거라고.)
아이들의 말을 들은 후 나도 한번 찾아본다.
지렁이는 ‘지구 토양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한다.
흙 속에 살며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는 과정에서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질감도 좋게 만드는 지렁이.
지렁이가 배설한 흙을 분변토라고 하는데, 이 분변토는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비료라고 한다. (분변토도 꽤 많이 봤는데 이런 역할을 할 줄이야!!)
그래서 지렁이가 많이 사는 땅은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땅이라고 한단다.
아!! 그럼 여기가 땅이 건강한 곳이라는 의미구나!! 처음 안 사실이다.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렁이가 많이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구나!! 깨달음을 얻는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길을 가다 만나는 지렁이를 볼 때마다 아직은 깜짝깜짝 놀란다.
특히 비 온 다음 날 지렁이가 많이 나와 있을 때.
몇 년 전에는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날, 지렁이가 떼로 모여 말라있는 것을 봤다.
솔직히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그 길을 피하면서 쟤들은 왜 얼른 땅 쏙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두 아들과 이야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이런저런 생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이 좋다.
내가 어렸을 때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어른이 되어서 두 아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도 좋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만나도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이렇게 지렁이가 많은 곳은 처음 봤다고.
이젠 익숙해져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나랑 똑같구나.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것이 하나 둘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