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어머님께 다 이를 거예요!"
내가 남편에게 하는 협박(?) 조의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할 때마다 효과는 좋다.
"에이, 그러지 마요. 어머니가 아시면 나 정말 큰일 나요. 이젠 안 그럴게요."
남편이 나에게 잘못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큰 잘못을 한 적도 없다.
그래도 가끔 얄밉거나 속상할 때 커내는 나의 히든카드다.
그건 어머님이 내 편을 들어주시기에 가능한 일일테다.
아주 깊은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겉으로 봐서는 (누가 봐도 그럴 정도로) 내 편을 들어주신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어머님은 아들 셋을 낳고 키우셔서 그런가, 아들 둘 낳고 키우고 있는 나를 안쓰러워하신다.
그래서 남편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아들 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네가 잘해야 한다고.
조그마한 몸으로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힘도 없을 텐데, 네가 집안일도 하고 해야 한다고.
(내가 키가 작은 편이라 그런 얘길 꽤 듣는다. 이 야리야리한 몸으로 어떻게 아들 둘을 키우냐고. 나 야리야리하지 않은데, 옷으로 커버되나 보다. ㅎㅎ)
남편은 자기 일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예전에 한창 하다가 하지 않더니 최근 또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게임을 하지 않기에 뭐가 그리 재밌을까 싶긴 하지만, 과하지 않다면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이 본인은 게임에 돈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항상 얘기했다.
돈을 쓰면서까지 게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나에게 딱 걸렸다. 최근 게임에 돈을 몇 십만 원 쓴 것을.
남편 메일 관리를 내가 하고 있어서 보는데 어느 날부터 낯선 곳에서 결제 내역이 눈에 띄었다.
일하면서 결제한 거겠지 싶어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에도 몇 번 같은 결제 내역이 있는 것이 이상해서 확인해 봤더니, 게임에 사용한 금액이었다.
오호라~ 게임할 때 돈 쓰면서 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더니, 돈 아끼자고 얘기하더니. 이게 뭔 일이람?
"오빠, 게임에 돈 안 쓴다면서요?"
(약간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안 그런 척하면서) "그럼요. 나 그냥 게임만 하는 거예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내가 오빠 메일로 다 확인했는데요? 오빠가 게임에 돈 쓴 거"
"무슨 말이에요? 아, 그게 메일에 남아 있어요?"
"네. 정확하게 남아 있던데요? 돈 아끼자고 하더니, 게임에 돈을 쓰고 있었어요?"
"아, 이번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너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했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알았어요. 이번 한 번은 넘어갈게요. 다음에 또 걸리면 어머님께 이를 거예요!"
"아, 제발, 어머니께 말하면 나 진짜 죽어요. 이젠 안 그럴게요."
이러면 안 되지만 이럴 때 남편의 반응이 재밌어서 이런 말을 더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며칠 후 또 나에게 걸렸다.
이 남자는 숨기지도 못할 거면서, 나에게 매번 걸리면서 무슨 배짱으로 이러는 것인지.
짐짓 심각한 표정과 말투로 남편에게 얘기한다.
"오빠, 게임에 또 결제했네요? 이젠 어머님께 진짜 이를 수밖에 없네요."
"아, 제발. 이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이젠 진짜 진짜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님께 제발 얘기하지 마요. 어머님한테 잔소리 폭탄 들어요."
(아, 이건 남편에게 몇 번 들었다. 나에게는 그러시지 않는데, 남편에게 전화로 엄청난 잔소리를 하시면서 화를 내신다고. 최근 내 생일에 미역국 끓여주지 않아서 엄청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알았어요. 이젠 다시 그러지 마요. 그리고 솔직히 내가 어머님께 말한다고 하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잖아요. 매번 오빠가 얘기했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다음부터 진짜 그러지 마요. 나도 내가 어쩔지 모르겠으니까요."
"알았어요."
난 어머님께 항상 이야기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다른 이유들도 많지만, 나에게는 어머님이 나의 방패니까.
남편에게 협박(?)할 수 있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