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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

by 느린 발걸음


사직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휴직기간이 길었으니 그 그간까지 합하면 8년 동안 내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은 셈이다.

임신하면서부터 커리어에 브레이크가 걸린 셈인데.

그 브레이크가 나쁘지 않았다.

제대로 쉬지 못했던 내 일상에 쉼이라는 틈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뭐, 육아가 더 틈이 없는 촘촘한 일상이긴 하지만, 이젠 몇 시간이라도 자유라는 이름으로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조금씩 초조해진다.

뭐든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남편 일을 재택으로 도와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포트의 개념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접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방황이 꽤 오래 지속되는 셈인데, 그 사이 내 맘도 왔다 갔다 흔들린다.

나만의 일을 찾아 돈도 벌고 나라는 사람을 다시 사회에 조금씩 적응시키고 싶기도 하면서, 가끔은 왜 굳이 이런 생각에 나를 괴롭히는가 싶기도 하다.

주부로 만족하면서 집안을 잘 꾸려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나도 그런 삶을 한때 꿈꿨는데, 내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서?


집안일과 두 아들 챙겨주는 것. 그걸로도 벅찰 때가 있긴 하다.

하지만 워킹맘은 다 하는 일 아닌가? 그러면서 자기 커리어로 돈도 벌고.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씩 내 모습이 한심해진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일단 책을 펼쳤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내보이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더욱 많겠지만 그래도 꽁꽁 숨겨뒀던 과거에 비하면 이것만 해도 용기일 테니.

그런데 가끔 뭐 하는 건가 싶은 때가 있다.

이것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게 쌓여서 뭐가 될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천천히 하자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여러 주변 상황을 보면 나 혼자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조급해져서다.


초반엔 남편이 주는 생활비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남편 사업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긴 했었지만, 어떻게든 둘이 헤쳐 나갔으니까.

그런데 남편이 주는 생활비와 내가 직접 번 돈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출산 휴가 1년은 유급이었기에 급여를 받았었다.

당시엔 일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르다는 느낌을 잘 못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많이 다른 거였다.

남편 일을 도와주면서 조금 받는 급여도 어쨌든 남편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 말고 다른 돈을 벌고 싶은 거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아이들이 일찍 오기 때문에 풀타임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도 이젠 어딘가에 매여서 일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기도 하고.

욕심은 많고 능력은 없고 딱 그런 것인가?

경력 단절기간이 9년이 넘어가다 보니 섣불리 뭘 할 수 있을지 겁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두 아들도 키웠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나기도 하고.

정말 갈팡질팡 상태다.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자 생각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욕심이 큰 것인가?

남편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거라고 한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 만족하지 않고 뭐든 하려는 것 자체가 나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니, 자존감이 높은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일까? 자존감을 조금씩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무너질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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