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허하다 싶으면 찾게 되는 보양식.
직장 다닐 때는 친구들과 추어탕, 삼계탕을 즐겨 먹었다.
이상하게 다른 계절에 비해 더운 여름철에 많이 찾게 됐다.
땀을 많이 흘려(난 땀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허해진 기력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뜨거운 음식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것이 내 몸을 조금은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그 외 먹었던 보양식은 오리탕 두 번 정도. 이건 어느 정도 먹을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지막은 친구에게 속아 먹게 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멍멍이탕.
색깔부터 별로였고, 먹을 때도 힘들어서 거의 못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염소탕이라고 괜찮다고, 보양시켜 주겠다고 데려갔는데 내가 별로 못 먹자 나중에야 사실을 알려줬다.
그때 당혹스러움과 찝찝한 기분이란. 두 번 다시 절대 근처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후에도 즐겨찾는 보양식은 삼계탕과 추어탕이다.
이 둘은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 대중적인 음식인 것도 있고.
그런데 강원도에 가면 어머님께서 애들 키우느라 고생 많다고 여자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먹으러 가자고 하실 때가 있었다.
그렇게 흑염소탕과 오리탕을 하는 가게에 몇 번 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일단 냄새부터 조금 별로였다. (내가 냄새에 좀 예민하다.)
그래도 잘 먹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비주얼도 그렇고 비린내가 나는 것이 나에겐 맛도 영 별로였다.
어머님께서 생각해서 데려와주셨건만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내겐 안 맞는 것이었다. 오리탕은 예전에 친구들과 먹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흑염소, 오리 고기에는 거의 손도 못 대고 죽만 조금 먹었다.
남편에게 나는 이런 음식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자, 남편도 자기도 그렇단다.
그러면서 다음엔 오지 말자고 이야기해서 그다음부터 가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어머님께서 오리를 직접 가져오셨다.
오리탕을 끓여주고 가고 싶은데 병원 외래 끝나고 바로 강원도에 가셔야 해서 요리는 우리 몫이 됐다.
손질된 오리였지만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아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자기가 하겠단다.
찾아보니 비린내 잡는 방법이 나와 있어서 그 방법대로 하고 한약재를 넣어서 푹 끓였다.
이러면 조금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생각해서 가져오신 건데라는 생각에.
다 끓이고 남편이 그릇에 담아 주는데, 비주얼은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고기를 먹는 순간 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아무리 비린내를 잡는다고 했지만 특유의 냄새가 있나 보다.
그렇게 고기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죽만 조금 먹었다.
한 그릇을 겨우 먹으면서 나는 이게 한계라며 더 이상은 무리라고 말했다.
남편도 자기도 그렇다고 하면서 저 많은 것을 어떻게 하냐고 했다.
첫째 아들도 한 그릇 딱 먹더니 자기는 여기 까지란다.
하... 큰일이다. 솥에 한 가득인데. 남편이 안 되겠는지 한 그릇을 더 먹는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내 옆에서 잘 먹고 있다. 맛있냐고 물어보자 맛있단다.
신기하다. 다들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우리 집 가장 막내가 이렇게 잘 먹다니!
다 먹은 후 또 달라고 해서 몇 그릇을 먹었다.
다행히 둘째 덕분에 오리탕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다음에 다시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설날 강원도에 내려가니 어머님이 또 오리탕을 끓이셨다.
남편이 우리 오리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여자 몸에 좋아서 사 오셨단다.
하... 며느리를 생각해서 사서 손수 끓이신 정성은 감사한데, 먹지 못하는 나는 부담스럽다.
그날은 죽만 아주 조금 먹었다.
남편도 많이 먹지 못했고, 첫째 아들도 마찬가지. 둘째도 그날따라 많이 먹지 않았다.
남편이 돈도 비싼 오리 말고 그냥 닭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닭은 그래도 온 식구가 잘 먹으니까 괜찮다고.
괜히 비싼 오리를 사 와서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말이다.
어머님이 그렇냐며 다음부턴 그래야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조금 죄송스럽긴 했다.
그런데 내가 못 먹겠는 걸 어쩌겠는가. 내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데.
남편과 둘이 얘기했다.
우리들의 보양식 마지노선은 뭘까하고 말이다.
남편은 훈제오리는 잘 먹으니 오리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닭이란다.
나는 훈제오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무조건 닭이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닭도 고기보다는 죽을 더 좋아한다.
각자 자기에게 잘 맞는 음식을 챙겨 먹으면 될 것 같다.
비싸다고, 좋다고 먹는 음식이 내게 맞지 않으면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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