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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예쁜 척해요?"

by 느린 발걸음


집에서 나는 생얼로 있는다.

아, 아니구나. 생얼은 아니고 스킨, 로션 정도는 바르고 있다.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아무리 옅더라도 화장품이 내 얼굴을 덮고 있는 것이 갑갑해서 얼른 씻어버린다.

맨얼굴에 자신 있다기보다 그냥 이게 편해서다.


가끔 화장술이 뛰어난 사람을 보며 감탄한 적은 있어도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한 적은 별로 없다.

그 부지런함을 내가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화장품 개수도 많지 않다.

기초 화장품에 선크림, 아이브로우, 립틴트, 립스틱, 팩트, 볼터치. (아, 마스카라도 있구나.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 그렇지.)

총 화장시간 5분이면 충분하다. 가끔 그보다 훨씬 짧을 때도 있고.

그래서 가족이 외출할 때 엄마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은 우리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제일 빨리 준비하기에. (원래 좀 성격이 급한 편이라서)


예전엔 집 근처에 나갈 때도 기초 화장품에 선크림, 아이브로우, 립틴트는 발랐다.

그게 예의라서 생각해서다. 아무것도 못할 땐 립틴트라도 꼭 발랐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으면 어디 아픈 사람 같아 보여서.

그런데 점점 게을러진다.

마스크와 모자를 쓰면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외출할 때가 있는 거다.

아, 물론 집 근처에 갈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겨울에 좀 심했다. 추워진 날씨만큼 내 몸도 둔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슬글슬금 피어올라서.

하지만 날씨가 조금씩 따스해지면서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기본이라 생각하는 것은 하고 외출한다.


그런데 내가 화장품을 바른다고 거울을 보고 있으면 두 아들 어김없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 왜 예쁜 척해요?"

"그냥 화장품 조금 바르고 있는데 뭐가 예쁜 척이에요?"

"그렇게 거울을 보고 바르고 있으니 예쁜 척이죠."

"아니, 거울을 봐야 내 모습을 볼 수 있죠."

"뭘 그렇게 많이 바르는 거예요? 아유, 냄새도 지독하네요."

어이가 없다. 이제 스킨 바르고 있다고. 그리고 나도 냄새에 예민해서 향이 진한 건 사용하지도 않는데.

본인들은 로션 하나만 바르면 끝나니 그에 비해 내가 많이 바른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데 그게 왜 예쁜 척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냐고.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엄마는 왜 예쁜 척해요?"

이건 내가 화장할 때만이 아니다. 내가 외출하려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해당된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엄마, 오늘도 예쁜척했네요." 이렇게 얘기한다.

아니, 집에서 입고 있는 옷을 입고 외출할 수는 없지 않냐고 물어도, 거울을 그렇게 보고 있으면 예쁜 척하는 거란다.

빗으로 머리카락을 빗고 손질하고 있어도, 귀걸이를 해도 어김없이 '예쁜 척' 한다고 말한다.

거울을 오래 보고 있다고. 머리 손질하는데 거울은 봐야 하고, 머리 손질하는데도 5분이 채 안 걸리는데.

귀걸이는 거울을 봐야 제대로 귀에 난 구멍에 넣을 수 있는데.

참, 자기네들도 거울 보면서. 가끔은 나보다 더 많이 보면서.

가끔 보면 얘들이 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남자 애들이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건지 헷갈린다.


그렇게 따지면 남편도 거울 보며 스킨, 로션 바르고, 머리도 손질하고, 옷을 다 갈아입은 후에 보는데.

남편에게는 "아빠, 왜 잘생긴 척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좀 억울하네.

아, 남자들이 가끔 숙덕숙덕거리던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반응이 즉각적이라서 재밌어서 계속 놀리고 싶다는 말.

아, 이게 문제였구나. 그럼 내가 반응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그게 잘 안된다. 즉각적인 반응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 이러니 우리 집 남자들이 나를 이렇게 놀리는구나.

뭐, 어쩔 수 없지. 가끔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사는 수밖에.

나도 웃겨서 웃는 경우도 많으니.



* 이미지 : https://pin.it/5 WJKCNp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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