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북클럽 모임이 있었다.
집 근처가 아닌 30분 정도 있는 거리.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 하교를 남편에게 부탁했다. (남편 출퇴근시간이 늦다)
12시 40분까지 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가서 하교시킨 후,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눈**센터에 데려다 주기만 하라고.
둘째 아들에게도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갈 거라고 얘기했는데, 둘째 아들 울먹거린다.
엄마가 데리러 오면 안 되냐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화요일에도 남편이 데리러 갔는데 조금 늦었나 보다.
자기가 정문에서 잠깐 기다린 것이 싫었던 거다. (이럴 때 보면 아직 아기다.)
엄마가 오늘은 시간이 안되니 아빠에게 꼭 제시간에 나가라고 얘기하겠다고 안심시켰다.
나가기 전에 남편에게 한번 더 당부하고 외출했다.
북클럽 모임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집에 거의 다 와 가던 중,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둘째 아들이 학교에서 너무 힘들었다며 눈**센터 하루만 쉬겠다고 한다고.
하. 또 시작이다. 억지로 보낸 것도 아니고 자기가 가고 싶다고 다니고 있는 곳인데.
가끔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굳이 안 다녀도 된다고, 지금은 그냥 놀아도 된다고 얘기해도 어느새 생각이 바뀌어 계속 다니겠다고 한다.
가끔 힘들다고 안 간 날이 있어서 지금 또 그 방법을 쓰는 거다.
줄넘기 학원도 다니기 싫다고 3월에만 두 번을 안 나갔는데. (이것도 자기가 하고 싶다고 다닌 곳이다)
둘째 아들을 바꿔보라고 한 후에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힘들었어요? 그럼 잠깐 쉬었다가 가요. 요즘 학원 계속 빠지고 있잖아요."
"오늘 내가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도화지 자르고 그림 그리고 글씨 쓰고 엄청 힘들었다고요."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잠깐 쉬었다가 가라고요. 어제 줄넘기 학원도 안 갔잖아요."
"싫어요. 가기 싫다고요. 힘들어서 가기 싫다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얘기해요. 나 이제 엄마 싫어할 거예요!" 라며 약간 울먹거림과 화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남편이 대신 받더니 일단 집에 가겠다고 한다. 나도 금방 도착하니까 집에서 보자고 얘기한다.
잠깐 생각했다. 아이의 힘듦을 충분히 공감해 준 후에 이야기를 했어야 했나? 아고, 어렵다, 어려워.
집에 도착하기 3분 전, 남편에게 전화 왔다.
"둘째가 집을 나가겠다고 해요. 우리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에 가서 살겠대요. 그래서 아파트를 사야 한다며 지금 자기 통장을 꺼내놨어요." 남편 말투에 웃음이 묻어있다.
하,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어이없다.
둘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저 아파트 사면 아빠는 초대해 준다고 했죠?"
"네."
"엄마는요?"
"엄마는 못 와요. 엄마는 나를 화나게 했으니까요."
둘이 꿍짝이 잘 맞다.
끊으라고 하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둘째 아들 나를 못 본 체하려는 게 보인다.
안아주며 많이 힘들었냐고 물어봤다니 그렇단다.
너무 힘들었는데 엄마가 학원에 가라고 해서 화가 났단다.
"그래서 oo 아파트 사서 나가겠다고요?"
"네! 전 이제부터 저기서 살 거예요."
"저기 아파트 살 돈은 있고요?"
"은행에서 돈 빌리면 돼요."
하. 이 아이의 당당함에 말문이 막힌다.
남편과 눈이 마주친다. 둘 다 어이없긴 하지만 이 상황이 우스워서 웃음을 참고 있다.
귀엽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한편으론 저 아이의 생떼를 언제까지 받아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집에서만 하긴 하지만, 알려줘야 할 건 알려줘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니 둘째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인다.
아이의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다음, 팩트를 알려줬다.
지금 네가 가진 돈으로는 아파트를 살 수 없다고, 은행에서 대출도 안 나온다고.
왜 그러냐고 물어봐서 너는 아직 어려 스스로 돈을 벌지 않아서 신용이 없다고 알려줬다.
그 이후에 신용이 뭐냐 등 물어봐서 알고 있는 선에서 얘기해 줬다.
그런데 괜찮단다. 아빠가 돈을 준다고 했단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 물어보니, 모자라면 아빠가 돈을 보태준다고 했다는 거다.
아이고, 머리야.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은행 지분이 반인데.
남편을 쳐다보니 자기는 그런 식으로 얘기한 적 없다고 억울해하는 눈치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건지.
그 사이 첫째 아들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첫째를 데리러 가는 길에, 둘째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오늘 눈** 센터 갈래요."
"아깐 안 가겠다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요? 나 그런 얘기한 적 없는데요?"
뭐지? 어쩜 이렇게 뻔뻔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지? 가라고 했다고 집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능청스럽게도 자기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식이다.
그러고는 씩씩하게 들어가서 수업하고는 재밌었다고 얘기한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나처럼 어이없어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다.
* 추가 : 며칠 후 혼자 목욕하라고 했다고 뿔이 나선 (초등학교 3학년인 형한테 같이 하자고 했는데 첫째 아들이 좀 지쳐 보였다. 그래서 형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했으니 이젠 스스로 해보라고 했을 뿐이다.) 나에게 편지를 준다. 펼쳐보는데 웃음이 슬슬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