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책 속 한 문장

by 느린 발걸음

"죽음이란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이다. (중략)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한다."

김상욱 저자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죽음을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예전엔 죽음이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죽음 이후,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어서다.

죽은 후에 죽음이 어떻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죽었으므로.

가끔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가 있긴 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긴 터널, 혹은 통로 같은 곳을 이동한 후 밝은 빛을 마주하는 것, 인생의 장면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것.

“아직 갈 때가 아니다”라는 직감 또는 누군가의 음성 이후 되돌아온 것.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죽음에 관한 공포 감소, 물질적 욕망 감소, 관계 중심적 삶 지향, 자연·타인에 대한 공감 증가 등.

하지만 어쨌든 그들도 다시 살아 돌아왔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그런데 나는 왜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을까?

죽음 이후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른다는 이유만이었을까?

아마 그 기본값에 여러 가지 이유가 덧붙여졌을 거다.

죽음이라는 걸 대비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알면 한 인간으로 살았던 삶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으로는)

하지만 오랜 병을 앓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에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닥치는 죽음도 있다.

어떤 죽음이든, 죽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사라지는 것 같다.

그 사실이 허무하면서 무섭게 느껴졌다. 유에서 무가 되는 게 뭔지 잘 모르니까.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죽음은 늘 있어 왔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냐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할머니, 친척 어르신들...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고 그 당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춘기 시절, '내가 죽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었겠지만, 아직은 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에만 그쳤다.

그러다 대학생이었던 친척 오빠의 죽음에서 젊은 사람도 죽을 수 있구나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어린 사람의 죽음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기에.


그러다 20대 중반 친했던 친구의 죽음을 경험했다.

몇 년간 많은 시간을 보냈고,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친구. 서로 많은 걸 의지했었던 친구였다.

사인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그렇게 헤어질 거라는 걸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었기에 충격이 컸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다.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하고 자기 삶을 그렇게 마쳤어야 했을 친구는 어땠을까, 혼란스러웠다.

그 친구의 부재로 인해 죽음이 내게 성큼 다가오면서 죽음은 내게 두려운 존재가 됐다.

그런 혼란스러움 가운데 직장 특성상 죽음에 가까운 이들을 보고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더 무서워졌다.

덤덤한 척했지만 마음은 많이 소용돌이쳤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죽음은 더욱 그랬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사람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얼른 가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 고통만 사라지면 좋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무서웠던 것 같다. 누구든 죽겠지만, 내가 죽는 것도 무섭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도 힘들 것 같았다.

나는 특히 소수와 다소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었기에 그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이 내 한 부분이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으니까


내가 분명 여기 존재했는데,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

죽음 이후에 뭐가 될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기에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

그래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하면 내게 다가올까 봐.

인간으로 살고 있는 이 삶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는 거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흔들리면서도.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고 싶지 않아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진시황도 결국엔 죽었다.

아마 죽는다는 건 나의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생각에서 두려움이 커서였을거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 죽음으로 충만한 우주에 홀연히 출현한 생명이라는 특별한 상태.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직 외계 생명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있다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죽음을 원자의 소멸이 아니라 원자의 재배열로 본다면 어떨까?

내가 죽어도 내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흩어져 다른 것의 일부가 되면, 우리는 원자를 통해 영원히 존재하는 셈이다.

이 이야기가 위안이 되는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무로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원자를 통해 어떻게든 존재한다는 거니까.


나는 저 문장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잘 살아야겠다고. 죽음 이후 원자의 재배열로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생을 나답게 살아야 후회 없지 않을까.

나답게, 좋은 사람으로 살았던 흔적이 남아야 내가 다른 무엇이 되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가끔은 멈춰서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미 늦었다고, 이번 생은 글렀다고 말하기엔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삶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인간으로 살았던 삶이 조금은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나중에 '아, 그렇게 살 걸.'이라는 후회가 덜 하게 말이다.

'이번 생은 좋은 사람으로 잘 여행하고 간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갈 수 있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질문하고 답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내가 진정 원했던 길이 무엇인지, 이 방향으로 계속 가도 되는지 나에게 묻고 답하기 위해서.

글을 쓰다 보면 가끔 희미한 길이 보이기도 하니까. 이 방향이 아니다 싶으면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된다. 내가 10년 넘게 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방향으로 돌린 것처럼.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도 계속 가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길은 점점 희미해지고, 어느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길은 연결되어 있다. 지금 방향을 잠깐 틀었다고 해서 문제 되지 않는다.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길은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 인생이라는 걸. 그러니 내 인생을 살자고 다짐한다.

물론 결혼해서 두 아들의 엄마로 살면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것도 내가 선택한 인생이니까.

하지만 모든 시간을 가족에게 쏟아붓지 않는다. 나를 위한 시간은 남겨둔다.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그 시간이 모이면 크게 된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남은 생은 내가 중심이 되어 주변과 따스하게 어우러지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나중에 죽음에 이르렀을 때, 아직은 아니라고 하지 않고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원자의 재배열로 다른 무엇이 되더라도 지금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희한하다.

분명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래,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조금은 두려움이 덜했는데.

덜컥 전해지는 누군가의 죽음은 여전히 무섭다.

아무리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알고 있어도 감정이라는 게 파고들어서 그런가 보다.

많은 추억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걸 보면, 죽음이란 녀석이 대단하긴 하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 서서히 잊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아주 가끔 꺼내드는 거겠지.

그래도 막연하기만 했던 죽음에 조금 다른 단어들을 첨가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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