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에게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

by 느린 발걸음

3월 3일이면 두 아들의 개학일이다.

길고 긴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을 맞이하는 날.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1년을 시작하는 날.

두 아들은 며칠 전부터 학교 가기 싫다고 이야기한다. 겨울방학이 너무 짧은 것 아니냐고 하면서.

두 달이면 엄청 긴 것 아닌가? 나는 2월에도 학교에 갔었는데.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방학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

뭐든 좋은 시간은 후딱 지나가버리는 것 같으니까.


나는 내 일도 아닌데 긴장된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되면 언제나 긴장감이 컸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긴장감도 있었겠지만,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내향적인 성격에 소수의 친구들과만 관계를 맺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다.

여학생들은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단짝처럼 지냈고, 그런 친구가 없으면 소외받는 기분이 느껴졌으니까.

내 학창 시절이 생각나면서, 두 아들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혼자 걱정을 하고 있는 거다.

두 아들을 보면 긴장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가늠할 수가 없다.

시대도 조금 변하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이라서 그런가? 내가 남자가 아니다 보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이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떻게든 적응하고 지내는 것 같다.

그게 신기하면서도 대견하다. 학교 다니는 중에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많이 하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직장 다닐 때 직장 가기 싫다는 말을 했었으니까.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추억을 쌓는 1년이 되길 바라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이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뭐,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아이들은 학교에서의 일을 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어떻게 지내는지 잘 살펴야 한다.

부모의 관찰력이 좋아야 한다.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그러고 있는가?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는 것 같다. 그게 참 어렵다.

말을 하면 문제가 있을 경우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둘째 아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꽤 이야기한다.

첫째 아들도 어릴 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젠 비밀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 버린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짐작할 수 없어서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는 일. 정말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가끔 두 아들에게 학교에서 뭐 했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이야기할 때가 꽤 있다.

방금 하교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다른 아들 엄마들 얘기도 비슷한 걸 보면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자기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으니까.

성별이 다르다 보니 남자아이에 관한 것도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평행선만 그을 테니까.


매년 새 학년이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은 한다.

실제로 써준 건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뿐이지만.

그땐 뭔가 둘 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생각에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언제나 너희 편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고.

첫째 아들은 내 편지를 혼자 읽었고, 둘째 아들은 아직 한글을 읽지 못하던 때라 내가 읽어줬다.

내가 쓴 편지를 내가 읽어줄 때의 그 민망함이란. 그래도 나름 씩씩하게 읽어줬다.

둘 다 당시엔 몇 번씩 열심히 읽더니 언제부턴가 방바닥에 뒹굴거리는 걸 봤는데, 이젠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뭐, 다 그렇겠지. 씁쓸하지만 이해한다.


이젠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된다.

두 아들에게 이번에는 생각만 하지 말고 편지를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미뤄두고 며칠 전에야 겨우 썼지만. 처음에는 편지지에 조금만 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편지지에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 정리가 안 될 것 같아서 타이핑을 했다.

쓰다 보니 A4 한 페이지 분량이 나왔다. 이럴 수가.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가.

줄일까 생각하다 그냥 그대로 주기로 했다. 잠깐 고민했다. 타이핑한 글을 편지지에 옮겨 적을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시간 소모에 내 팔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요즘엔 글자를 이쁘게 쓰지도 않아서 무슨 글인지 잘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배경을 조금 이쁘게 해서 출력했다. 역시... 이게 훨씬 깔끔하다.

손편지에서 느껴지는 정성은 조금 덜하지만, 가독성이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맞다. 핑계다. 요즘엔 손글씨를 잘 쓰지 않다 보니 가끔 쓰는 글을 내가 못 알아보기도 한다. 예전엔 글자 잘 쓴다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 내 글씨를 보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수준. 그러니 모두를 위한 길이다.)


글을 읽어보니 응원의 메시지라고는 했지만,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응원, 격려, 염려, 안쓰러움, 대견함 등에 이어 잔소리까지 느껴지는 말까지.

편지에까지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최대한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게 포장하긴 했는데.

읽는 아이들 입장에선 어떨지 모르겠다.

편지만 주기엔 이젠 아이들이 좀 커서 문화상품권도 삼만 원씩 준비했다.

둘 다 책 읽는 걸 좋아하기에 자기가 원하는 책 언제든 살 수 있게.

계속 나에게 책 사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집에 책이 많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는 건 먼저 빌려보기를 권한다), 아빠를 꼬셔서 사 달라고 해서.

아빠는 아이들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걸 이용하는 거다. 이럴 때 보면 영악하다.

아빠 돈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문화상품권으로 자기가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으니 그게 낫겠다 싶어서 샀다.


그러고 보니 이제 방학이 정말 며칠 안 남았다.

두 아들은 나에게 자기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는 좋겠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처음에는 걱정이 되겠지만, 너희들이 적응하는 만큼 엄마도 적응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으면 새 학년에 대한 걱정이 돼서 방학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 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전 방학들을 떠올려 보면 개학하고 며칠이 지나면 그런 생각이 사라져 버렸었다.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는 증거겠지.

1월 갑작스러운 수술로 인해 아이들 방학 동안엔 회복하느라 그랬지만, 3월부터는 헬스장에도 갈 생각이다.

두 달 동안 헬스장에 가지 않았더니 이젠 조금씩 갑갑해지려고 한다.

두 아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하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아이들도 잘 적응하고, 나도 내가 해야 할 일 잘했으면 좋겠다.


*편지와 문화상품권은 3/1일 줄 예정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ㅎ










작가의 이전글시골, 좋지만 살고 싶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