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잘 몰랐던 것을 경험을 통해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시골에서 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창 귀농이 유행이었을 수도 있고.
부산에서 나고 자라긴 했지만 아주 어릴 때 언덕, 개울 등에서 놀았던 기억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할머니, 친척들 다 도시에 살아서 TV나 책 등에서만 봤던 할머니댁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골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막연한 환상 같은 걸 품고 있었을 수도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 자연과 함께하는 곳, 정겹고 사람 냄새가 풍길 것 같은 곳.
아마 나는 시골을 이런 이미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환상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 건 시댁에 가면서부터다.
시댁은 강원도 고성이다. 나는 결혼 전까지 그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강원도 여행이라고 해봤자 춘천, 속초, 정동진에 간 게 다였으니까.
처음에 갔을 때 너무 좋았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논밭뷰가 펼쳐진 곳. 바다도 가까이 있어서 금상첨화.
특히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줄 그곳에 가서 처음 알았다.
아, 별이 이렇게 무수히 쏟아지기도 하는구나! 엄청 감탄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하는데 서울에선 느낄 수 없는 광경이어서. 그게 너무 인상 깊었다.
어머님이 직접 밭농사하셔서 신선한 야채를 바로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작은 텃밭에서 내가 직접 키운 것들을 먹고 싶은 로망이 있었으니까.
윗집, 아랫집, 옆집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곳에서만 살았는데, 시골이라 그런지 집집마다 간격이 꽤 넓은 것도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마당이 꽤 넓어서 고기도 구워 먹고 앉아서 차 한 잔 마시면서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었다.
마트, 가게가 근처에 없어서 차를 타고 꽤 나가야지 뭘 살 수 있었다.
뭘 하나 깜빡하고 사 오지 않으면 다시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
병원, 약국, 편의시설, 식당, 카페, 행정기관 등이 거리가 멀어서 차가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곳.
대중교통이라고는 버스밖에 없는데 배차간격도 길었던 것 같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처음엔 신기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주문해야 보일러를 가동할 수 있는 곳.
사생활이 조금은 보호되지 않는 기분을 느낄 때도 가끔 있었다.
시댁은 마당과 바깥의 경계를 구분하는 문이 따로 없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 아시는 분들이 연락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었다. 어머님은 그게 일상이라 아무렇지 않아 보이셨지만,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단독주택이다 보니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잔디 깎고, 잡초 뽑고, 눈 치우고 등등.
쓰레기 재활용하는 곳도 멀어서 차가 있어야지만 가능할 것 같았다.
어머님은 또 밭농사를 하시기 때문에 매일매일 밭에 나가서 뭔가를 하셨다.
그 수고스러움이 감사하면서도 나는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집에 있는 작은 화분도 잘 못 가꾸는 나이기에 텃밭은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의문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해가 지날수록 보다 보니 내가 정말 시골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생각보다 해야 할 것들도 많고 불편한 점도 많아 보였다.
거기다 남편은 본인은 절대 시골에서 살지 않겠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가끔 내려가는 건 좋지만 그곳에서 사는 건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도시 생활이 더 좋다고.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시골에 가면 뭘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음, 그건 그렇다.
어머님이 밭농사를 하시다 보니 가끔 내려가면 거의 일을 함께 했던 것 같다.
남편은 어릴 때 부모님 도와서 농사짓는 게 그렇게 싫었단다. 벼농사도 함께 했으니 그땐 일이 더 많았겠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기와 농사는 맞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깨우치면서 다짐했다고 한다.
절대 농사일은 하지 않겠다고. 머리로 하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시골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너무 많고 이런저런 얘기가 항상 돌아다닌다고 했다.
남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얘긴데 본인은 그런 게 너무 싫단다.
어느 정도의 관심은 이해하겠지만 가끔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고.
좁은 동네다 보니 거의 다 아는 사람이라 좋을 때도 있겠지만 부담스럽다고.
음, 남편 말을 듣자 하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골에서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인간관계였다.
나는 사람과의 너무 깊은 관계는 부담스럽다. 가족이야 뭐 어쩔 수 없지만. (가끔 가족도 건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좋은 이웃이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머님 얘기를 듣고 본 시골 생활은 이웃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게 좋을 때도 있겠지만 부담스러울 때가 더 많을 것 같았다.
나는 이웃과 모든 걸 공유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 (어릴 때야 나도 타인의 이야기에 함께 동참하고 했지만, 그게 좋지 않은 것임을 알고, 기분이 좋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난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는 게 좋다. 차를 타고 한창 나가야 뭘 살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집이 좋긴 하지만 가끔은 집을 떠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게 좋다.
그게 지금 사는 곳에서는 카페, 도서관, 집 앞 공원이다. 나름의 충전을 하는 셈인데 시골에는 가까이 없다.
문화생활을 하기에도 시골은 불편하다. 여기서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 어디든 가능하다.
대중교통수단도 불편하다. 버스밖에 없다. 지하철, 기차, 비행기 모두 없다.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깨달았다. 나도 시골에 가끔 내려가는 건 좋지만 사는 건 싫다는 걸.
시골생활이 왜 불편한가 생각해 봤더니 도시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쭉 도시에서만 살았다. 남편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혼자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시골에서 쭉 사신 분들은 그 생활에 적응해서 사시는 것 아닐까.
그런데 도시에서 사는 사람 중에도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픈 희망을 가진 사람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그냥 내가 시골에서 쭉 생활하는 건 맞지 않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복작대는 도시 생활도 싫어한다. 사람이 많아 항상 시끌벅적한 곳은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지금 이곳이 나에겐 딱 좋다. 아파트에 살긴 하지만 행정구역상 읍인 이곳.
뭐,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사는 곳에 정을 붙이고 살면 좋은 것 아닐까. 시골은 시댁에 갈 때나 놀러 갈 때나 가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