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에 간다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꼭 봐야 하는 그림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키스’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화이자 회화에 문외한 일지라도 알고 있는 그림이다. 클림트의 실제 작품은 오직 벨베데레 궁전에 가야만 볼 수 있다. 빈에서 클림트의 다른 작품과 달리 ‘키스’는 해외 임대와 반출이 절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숙소를 벨베데레 궁전 근처로 잡았다. 새벽에 눈을 떠 궁전을 산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날 아침은 궁전 정원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정문에 도착한 시간이 5시가 조금 넘었는데 문이 잠겨있다. 정원을 6시부터 개방하는 줄 몰랐던 나의 불찰이다. 둘째 날 아침에야 새벽녘의 정원을 걸을 수 있었다.
떠오르는 아침빛을 뒤로 하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스프링클러에서 물방울이 반짝거리며 떨어진다. 어둠에서 깨어나 나른한 듯 기지개를 켜고 단장을 시작하는 귀부인의 자태가 이렇지 않을까. 8시 이후부터는 하나 둘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상궁 입장이 시작되는 9시 즈음에는 시끌벅적해진다.
‘아름다운 전망을 보이는’ 뜻의 이탈리아어인 벨베데레, 그 의미처럼 구름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하늘과 궁의 조형미 넘치는 정원 아래로 벨베데레 하궁과 빈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궁전은 사보이 왕가의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von Savoyen 1663~1736)의 여름궁전이었다. 정원과 건축물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바로크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오이겐 공자는 자식을 남기지 않았고 사후 궁전은 이탈리아에 살던 조카딸에게 상속되었다. 궁전에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궁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게 팔았고 이후 합스부르크가 황제들이 거주하는 궁전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아침의 청명함이 쏟아져 내리는 궁전의 정원을 걸었다. 곧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복제품이라도 애장하려는‘키스’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뭉근히 피어오른다. 클림트는 시대를 거스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금세공사 에른스트 클림트의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클림트, 그의 작품 속 찬란한 금색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그의 집안은 가난하였다.
후원을 받아 비엔나 장식 미술 학교를 어렵사리 졸업한 후 동생과 함께 미술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려고 힘썼다. 그러던 중 동생 에른스트가 죽는다. 얼마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고 기존 미술세력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탈출구가 필요했다. 피난하다시피 빠져든 세계가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었고 “나에 대해 알려면 내 작품을 보라”고 말하였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클림트 사후에야 14명의 여인이 그의 아이를 낳았다며 나타났다. 빈의 카사노바였던 셈이다. 그가 탐닉한 여인들은 그림 작업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었다. 자신의 육체를 한껏 드러내며 나만이 그대의 여인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성녀 아니면 요부였다.
클림트가 마지막까지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 이는 ‘키스’의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에밀리 플뢰게다. 미술계를 함께 개혁하고자 했던 든든한 동반자이자 친동생인 에른스트의 부인의 여동생이다. 클림트의 곁을 떠났던 그녀가 ‘키스’를 보고 난 후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네모와 원의 대비, 꽃이 가득 핀 절벽 끝에 짙은 색 피부의 남자의 힘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의 볼을 내 맡긴 체 눈을 감고 있다. 사방이 180cm인 그림 안에 담겨있는 몽환적인 분위기, 화려한 색채 앞에 시간이 멈춘다.
키스가 전시되어 있는 상궁에는 클림트의 ‘프리차 리들러 부인의 초상화’, ‘유디트’ 등 그의 최대 컬렉션과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 등 세기말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너무나 많이 봐서 익숙하다 못해 생활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그림 ‘키스’에 대한 감흥은 생각보다 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키스를 보기 위해 벨베데레 궁전에 간다. 벨베데레=키스라고 여겨질 정도로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원의 기하학적 조경미와 키스의 몽환미 사이에 빈의 파란 하늘이 떠오른다. 벨베데레의 키스는 절대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