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시계탑 전망대에서 맞은 프라하 석양

낮이 기니 하루도 긴 프라하, 첫날 두 번째 이야기

by 파란리본 황정희

새벽에 나가 프라하를 사진에 담고 하벨시장에서 납작복숭아도 샀으니 왠지 뿌듯하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이쯤이면 일어나야 하는 시간 맞겠지. 지금 가서 깨우면 적당할 거야. 역시 나의 천적은 딸이 분명하다. 사람마다 유난히 약해지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자식이지 않을까 싶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인 나에게 유난히 약해지는 대상은 딸이다.


하벨시장의 납작복숭아와 군침 돌게 하던 비싼 과일들

납작복숭아를 떠올리니 왠지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체코의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높지 않다고 했는데, 잘못된 정보였나?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것 같은 7월은 납작복숭아 한 개에 3000원 정도다. 빨갛고 검붉은 베리 종류가 너무 맛있어 보여 이것저것 담았더니 우리나라 돈으로 3만 원을 훌쩍 넘는다. 과일 몇 가지 비닐봉지에 가볍게 담았을 뿐인데, 차마 안 사겠다는 말은 못 하고 그래 이것도 프라하의 추억이지라는 최면을 걸며 돈을 냈다. 그 이후로 이도시 저시를 다니며 틈만 나면 구입했던 납작복숭아, 딸이 하벨시장에서 사 온 게 제일 맛있었다고 하니 돈값을 했다라며 위안을 한다.

Hotel Sovereign Prague 조식뷔페

납작복숭아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곤하게 자는 딸을 깨워 아침 먹으러 가자고 부산을 떤다. 조식 뷔페에서 좋았던 건 종류별로 나오는 햄과 치즈의 향연, 둘 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이다. 딸은 두 접시, 나는 네 접시를 해치웠다. 차라리 숙소에서 배부르게 먹는 게 낫다. 밖에 나가봐야 비싸고 맛은 제 값을 못한다.


젤라또 아이스크림이 딸을 걷게 한다


조식 후 간단히 챙겨서 카를교와 캄파공원으로 갈 생각이다. 꽤 멀다. 당근이 필요할 시점이다. 딸이 좋아하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기로 한다. 아이스크림 집을 가려고 했는데 카프카 얼굴을 형상화한 움직이는 조형물에 여행자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이곳도 프라하 핫플레이스 아닌가. 프라하는 대부분 걸어서 핫스팟을 다 둘러볼 수 있어 우리같은 뚜벅이족은 편하다.

움직이는 카프카


사람은 많고 카프카 조형물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카프카를 생각하면 나는 소설 ‘변신’이 생각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벌레로 변신해버린 자신을 발견한 주인공,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외판으로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으나 결국 흉물스러운 벌레가 된 그는 잊혀지고 소외된다. 결국 아버지가 던진 사과를 등에 박힌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죽었다는 것에 안도한 듯 소풍을 떠나는 가족들... 카프카는 실제 프라하의 우울을 증명하는 것처럼 숨어서 글을 쓰다 폐결핵으로 죽어갔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부조리함과 불안을 얘기했던 카프카는 프라하성의 황금소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방 같은 곳에서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결론을 얻었을까.


그러한 우울과는 상반되게 프라하는 싱그럽다. 다리를 건너 캄파공원 벤치에 앉았다.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 앞에서 뛰고, 놀고, 숨는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캄파박물관 옆에서도 아이들이 잔뜩이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조각가 ‘데이비드 체르니(David Cerny)’의 ‘기어가는 아기’라는 작품이 놀이터다. 내 눈으로 보기엔 흔히 보던 놀이터와 분명히 다르고 뭔가 요상하다 싶은데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다. 미끄럼을 타듯이 그 유명한 조각품을 타고 내려오며 이 순간이 너무나 좋은 아이들은 크게 소리 내어 웃을 뿐이다.

캄파공원
공원에서 티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


어디선가 기타와 노랫소리가 들린다. 5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의 기타와 음악소리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노래와 노점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엄청 비싼 음식 값이다. 달랑 새우 몇 개, 야채 몇 점 얹은 요리가 2만 원이다. 성수기의 프라하는 바가지 상술의 천국이다.

이곳만은 꼭 가야 한다기에 매일 새로운 그라피티로 덧칠해지는 존 레넌 벽으로 향한다. 당장 오늘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흔적을 남기는 여행자들, 내일이면 그 흔적이 왜곡될 것인데도 현재가 중요한 그들이다. 어디에 존 레넌의 얼굴이 있는지 가려져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존 레넌 벽
카를교의

딸에게 카를교는 꼭 보여주고 싶었다. 프라하에서 이곳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네포무크 성인과 그 아래 반질반질한 곳을 보여주면서 카를교를 함께 걸었다. 새벽과는 다른 엄청난 인파에 그 시간은 짧아졌다. 구시가 광장에 멈추었다. 수없이 많은 비눗방울들 사이로 맑은 하늘이 이곳이 유럽임을 실감케 한다.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비눗방울을 따라가는 아이들, 그 모습이 아무 욕심 없는 천국의 세상인 듯 한참을 바라보게 한다.

구시가광장과 천문시계탑

오늘의 메인은 천문시계탑이다. 정시가 되어 짧게 지나치는 조각들은 관심도 없다. 한 번이면 족하다. 이미 해가 질 무렵이다. 일부러 그 시간에 맞춰 시계탑 전망대에 오른다. 이곳에서 프라하의 석양을 만날 수 있으리라. 3층에서 표를 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올라 비로소 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리 넓지 않은 사각형의 짧은 구간을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방향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시시각각 변하는 프라하의 밤이 나를 숨 가쁘게 한다. 무심한 듯 프라하를 관조하던 딸조차 찰칵 거리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천문시계탑 전망대에서 맞이한 석양

프라하의 저녁은 이곳 천문시계탑에서 맞아야 한다. 수많은 세월을 타고 넘은 프라하가 잠이 들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그때는 세상이 느슨해진다. 보는 이의 마음도 헐거워지고 프라하 풍경도 긴박함을 감추고 그저 느른한 미소를 짓는다.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볍다. 딸로서는 꽤 걸었다. 마지막이 좋으면 그날이 좋게 기억되지 않을까. 지친 몸을 뉘는 딸을 보며 전망대에서 봤던 프라하 야경이 그녀의 삶에 흔적을 남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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