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첫날 아침, 카메라 하나 메고
그 자체만으로 좋았던 떠남, 프라하에서의 첫 밤을 보내었다. 앞으로 어떤 날들을 엮어갈지는 온전히 내 몫이겠지, 잘 떠나왔으니 속속들이 여행하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새벽 산책에서 카를교를 지나고 바츨라프 광장을 스쳤다. 오늘은 그 두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시차 탓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창문가에 서서 커튼을 슬쩍 들쳐보다가 어둠이 걷힌 것을 확인하고 카메라를 챙겨 호텔을 나선 시간이 새벽 4시 48분이다. 해가 뜨는 시각은 5시 3분(7월), 이미 여명으로 밝아지는 도시는 내가 어젯밤에 첫 대면하였던 그곳과는 사뭇 다르다. 인적은 드물고 거리는 종이 쪼가리 하나도 뒹굴지 않는다. 어젯밤은 분명히 음울한 회색이었는데 아침은 생소할 정도로 다른 느낌이다. 아직까지 회색의 음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낮, 특히 저녁의 카를교와 구시가 광장을 마주하면 그 격차가 얼마나 큰지 놀랍다.
입영을 앞두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처럼 어색하다, 거리도 나도. 거리에서 지나친 이는 몇 명이 되지 않는다. 정말 아무런 교집합이 없는 완전한 타인의 얼굴을 하고 서로를 스친다. 평면이 아닌 입체를 통해 발에 와 닿는 감각은 내가 이방인임을 자각하라는 듯이 내내 나의 발바닥을 낯설게 자극한다.
숙소에서 나와 첫 번째 골목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돈다. 빨간색 트램이 3~4명의 사람을 태우고 달려간다. 오른쪽 골목 끝에 잿빛 시간의 흔적을 뒤집어쓴 진드라스카탑이 서있다. 프라하에 머무는 4박 5일 동안 이 탑을 몇 번이나 마주했는지, 나에겐 내가 머무는 곳으로 가는 이정표였다.
구시가 광장을 지나 블타바강으로 향하는 여행자는 방향을 정확히 잡지 못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 강가에 다다른다. 좁은 골목과 작은 도시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길을 잃는 것이 귀찮지 않은 유럽 골목길 걷기였다. 마네수브다리를 건너 카를교를 새벽에 건너려 한다.
나의 여행은 이렇듯 새벽에 이루어졌다. 비가 오지만 않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부스스 눈을 떴고 얼굴에 물만 찍어 바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수줍은 듯 내미는 햇살 너머로 도심의 아침을 달리는 이들의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전투에 승리한 이의 개선행진처럼 그들의 다리는 힘이 넘쳤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프라하, 빈, 블레드, 잘츠부르크... 의 아침을 걸었다.
프라하성 쪽 강가를 걸어 말라스트라나 쪽 탑을 지나 여전히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카를교를 걷는다. 양 옆의 탑은 본래는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카를교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의 하나다. 프라하에서 아무리 짧은 일정이라도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면 카를교와 프라하성이다.
카를교는 체코의 황금기인 카를 4세 재임 시절인 1357년에 놓기 시작하여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성되었다. 그 이후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만들어진 30개의 성인상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반들반들 은색으로 윤이 나는 네포무크 조각상 앞에 섰다. St. John of Nepomuk상은 프라하 이발사의 다리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조각상 아래에는 소피아 왕비가 고해성사하는 장면과 성 요한 네포무크가 고해성사의 내용을 말하라는 바츨라프 4세의 말을 따르지 않아 블타바강에 내던져지는 모습이 조각되어있다. 성인상 진품은 라피다리움국립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고 다리에 세워진 조각상은 모두 복제품이다. 아침에 문제가 있는 조각품이 교체되는 것을 보았다. 번들거리는 금색으로 조각상 아래를 바꾸고 나사를 돌리는 모습, 프라하의 관광의 얼굴인 걸까.
카를교는 새벽에, 사람들이 붐비는 낮에, 야경이 아름다운 밤에 이렇게 3번을 건너야 한다고 한다. 프라하에서 보내는 동안 시간마다 다른 카를교를 건넜고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카를교를 건너서 바츨라프 장으로 향한다. 숙소가 광장 한 블록 뒤에 있으니 광장을 걸어 숙소로 가려고 한다. 조식 전에 호텔에 가야지 쿨쿨 자고 있을 딸을 깨워 아침을 먹을 테니까. 광장은 네모난 Square가 아니라 대로변이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과 광장을 내려다보듯이 서있는 국립박물관, 그 아래에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있다. 바츨라프는 체코 민족의 수호성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소련의 영향을 받는 국가였다. 그런 체코에 잠깐 봄이 왔었다. ‘프라하의 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 운동을 말한다. 체코의 공산당 정권이 개혁을 선언하여 때 이른 봄이 오는가 싶었으나 공산 종주국인 모스크바가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수없이 많은 탱크가 진입하였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한 공산당 정권은 항복을 하고 그렇게 프라하의 봄은 결국 꽃을 피우지 못했다. 1969년 1월 16일 바츨라프 광장에서 꽃 같은 청년 얀 팔라흐는 제 몸에 불을 지르고 산화한다. 약 한 달 뒤 또 한 명의 대학생 얀 자이츠가 분신하였다. 그 후로 프라하의 봄은 20년 동안 겨울이었다. 긴 겨울은 1989년 벨벳혁명에서야 바뀌었다. 두 젊은이의 죽음을 기억한 몇십만의 시민들이 광장을 메워 그 이름처럼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으로 공산통치를 종식시켰다. 광장에는 두 젊은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프라하의 새벽은 참 많은 것을 건넨다. 여행 중이라면 그곳의 아침을 꼭 걸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