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경험을 선물하기도 한다. 남원의 서도역과 혼불문학관을 찾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어화둥둥 즐기는 혼불문학 신행길 축제날이었다. 이래서 여행이 즐겁다. 새로운 곳,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낯설지만 새로운 기쁨을 알게 해 준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 무대가 서도역이다. 소설 속에서 무너져가는 남원의 종가를 지키는 3대 종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다. 신행은 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신방을 치른 뒤 신랑집으로 가는 의식을 말한다. 지금의 노봉혼불문학마을에서 서도역까지의 거리는 2Km 남짓, 이 길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혼불 소설 속 신행을 재현하는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7회째다. 보통 11월 첫 주 주말에 행해진다. 2021년에는 11월 6~7일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정도 신행을 재현하고 서도역에서 전통혼례의식을 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깃발을 든 사람들이 앞서고 그 뒤를 마을 사람들이 따른다. 농악놀이를 하는 이들이 후미다.
정말 우연이었다. 소설 '혼불'의 무대이자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였던 서도역을 찾았는데 그날이 신행길 축제날이었다. 서도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9시 30분부터 혼불문학관 아래 노봉혼불문학마을에서 퍼레이드를 할 거니 보고 가란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축제가 취소되었고 더 이상 쪼그라들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위축되었다. 퍼레이드를 한다는 얘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부리나케 마을로 올라갔다. 다들 전통 한복을 입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마을의 어르신까지 모두 나와 축제를 꾸려갈 생각에 설렘이 가득해 보인다. 미소가 떠오르는 정감 있는 마을 잔치 풍경이다. 외지인을 반갑게 맞아주는 잔치에 나도 모르게 어깨춤을 춘다. 2km의 퍼레이드가 짧다고 느껴진다.
퍼레이드의 최종 목적지는 서도역, 서도역은 1932년 개통되어 2008년에 폐쇄되었다. 전라선 기차가 다니던 서도역은 현재 역의 기능을 잃어 쓸쓸함이 감돈다.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대신 사람들이 철로 위를 걸으며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사진 속에 남긴다. 서도역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서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로 된 역사와 역은 영상 촬영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신행길 축제는 철로 옆에서 전통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우리나라 혼례 절차를 제대로 보여준다. 서도역과 혼불문학관이 안겨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에 홍보요원 명찰을 주더니 밥을 먹고 가라고 당부한다. 그냥 이런 상황이 좋다. 우리네 정은 이렇게 따뜻하고 격이 없으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구서도역영상촬영장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길 32
어느 계절에 가도 분위기가 있지만 벚꽃 피는 4월 초, 단풍이 드는 11월 초에 가면 더욱 좋다.
혼불문학관
관람시간 09:00~18:00 (월요일 휴무)
17년에 걸쳐 써간 최명희 작가의 혼불, 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문학관이다. 한옥으로 지어진 전시관과 정원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가 멋스럽다. 가까이 청호저수지가 있어 산책을 즐기기도 좋다.
#남원팸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