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워낙 갯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다보니 뒷전으로 밀린 경향이 있다. 그래도 첫 마음이라는 게 있으니 내 마음에 가을꽃은 여전히 해국이다. 해국(海菊)은 말 그대로 바다의 국화다. 거친 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줌 한 되는 흙에도 뿌리를 내린다. 전국의 해안가에서 자란다고 해도 무방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을날 바위 절벽에 보송보송 솜털이 난 잎에 연보라색 꽃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봄꽃이 남쪽에서부터 피어올라오고 가을꽃은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개화시기가 늦어진다. 단풍하고 매한가지다. 강원도 추암 해변은 10월 초, 동해와 서해를 지나 제주도 위쪽에 위치한 추자도는 10월 20일경에 풍성하다. 제주도 해국은 그 이후다. 지난여름은 유난히 드센 날씨였다. 태풍도 있었고 비도 잦았다. 또 얼마나 뜨거운 여름날이었는지 꽃이 제 시기를 못 맞추고 들쑥날쑥이다. 올해는 10월 말 경인 개화시기보다 10일은 더 늦게 꽃이 피었다.
해안 바위 절벽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에 시원한 바다바람이 불어온다. 발아래에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바위 틈새에 해국이 꽃수를 놓고 있다.
파도가 밀려들었다 멀어진다. 이곳이 해국의 보금자리다. 내가 서있고 해국은 꽃을 피우고 있다. 바다를 향해 토해내는 한숨이 해국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