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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문학]누가 앉은뱅이 꽃을 꺾는가?

제31회 장애인고용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텔링 부문최우수상

☆최봉혁기자의 사진여행☆잠실 아파트단지

"누가 앉은뱅이 꽃을 꺾는가?"

박성근            

  이 밤 나는 한국계 시각장애인 청년 코디 리(Codi Lee)가 부르는 노래 ‘A song for you’를 듣는다. 아메리칸 갓 탤런트 시즌 14 우승자의 노래다. 비장한 피아노 소리 가득 고단한 삶과 감동적인 가족 사랑이 배어난다. 함께 출연한 헌신적인 어머니께 그 노래를 바치는 듯 “우린 혼자이고 당신에게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자막이 내 가슴을 마구 파고든다. 지금 왼 편만 희미하게 남은 그믐달이 비틀거리며 내 방 창틀을 넘어서고 있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최 민호(가명)라고 합니다!”


  시내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분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은 멀리 떨어진 단어가 아니다. 차창 밖 1973년의 8월이 능소화를 달고 주황으로 팔랑였다.      

  

갑자기 시내버스가 덜컹거리자 겨우 걸음을 옮기던 그분이 휘청거리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가 그분을 껴안다시피 하여 내 옆 자리에 앉혀드렸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분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시각장애인이셨다. 그 분은 내 앳된 목소리를 듣고서도 내게 형님이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아까 승차가 느린 그분을 향해 기사분과 안내양이 투덜대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분명히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행동은 꼭 고의라기보다 별 생각 없이 행해질 수도 있다. 인격과 큰 상관없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권감수성이 무딜 수도 있을 것이다. 8월의 끄트머리지만 그날따라 무척 무더웠다. 더구나 일요일인데도 나는 모교인 고교 교정에서 오후 내내 카드섹션 연습을 했던 터라 많이 지쳐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피곤을 달래며 자취방으로 가던 길이었다. 나는 그 분을 보는 내내 고향의 어머니가 떠올라 목울대가 잠겨왔다.     

  

나는 고향 남도의 바닷가에서 도청 소재지가 있는 고교로 오기 전까지 시각장애이신 어머니의 눈이 되어 드렸었다. 내가 떠나온 후로는 세 살 아래 동생이 그 뒤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가끔 나와 함께 읍내의 음식점 등에 들르시면 종업원들에게 언니나 형님으로 부르셨다. 혹여 공격을 받으실까 두려워서였다. 그분도 어머니와 같은 심경이셨을 것이다. 

  

그분은 그 버스 종점 부근의 형님 댁에서 살고 계셨다. 그리고 평소에도 하염없이 반대쪽 버스 시점까지 갔다 되돌아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훨훨 새처럼 날아가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왠지 그 말이 쓸쓸했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나와 산책을 할 때면 늘 자유로운 새가 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버스가 막 거의 90도를 꺾어 큰 교량으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그분은 나름 긴 대화를 통해 나를 신뢰했는지 갑자기 인근 S 공원을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형님 내외가 너무 바쁘셔서 함께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며 하소연했다. 그리고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지폐를 한 장 꺼내어 내밀었다. 나는 극구 사양하며 몸이 천근만근 같았지만 흔쾌히 함께 가시자고 했다. 차마 그분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 가족만이 가족은 아닐 것이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그분은 앞이 탁 트여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이해되었다. 사실 나는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는 말씀을 어머니로부터 이미 수없이 들어왔다. 나는 어머니께 해드렸던 것처럼 손을 잡고 내 발걸음을 그분의 보폭에 맞춰 조심조심 걸었다. 아무 조건 없이 그분의 동행인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분께 처음으로 어머니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분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제야 형님 내외가 자신과 함께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고백했다. 그 때부터 우리들의 호칭은 제 자리를 찾았다. 




중략  다운로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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