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의 밸런스

by Bluese


걸음마를 뗀지는 오래되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오늘도 발을 삐끗하며 넘어질 뻔한다. 뻔한 것으로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참 잘도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많다. 과연 나는 걸음마를 뗀 지 2년 여 된 친구의 딸내미 보다 더 잘 걷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친구가 보내준 만 3살이 된 딸의 동영상을 보면서 불쑥 그런 의문이 들었다.




잘 걷는 일은, 균형을 잘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뒤뚱거리며 한 발 한 발, 몸이 앞으로 쏠리며 넘어질 것 같은 것을 바로 잡는 법을 터득하고 나니, 한 발을 띄고 다음 걸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다른 쪽의 발이 정확한 순간에 대신 바닥을 디뎌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둘 사이에 조금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스텝이 꼬여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쳤던 피아노 덕분에 리듬감은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 편인데도 큰 소용은 없다. 스텝이 자주 꼬이는 건 급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 곧잘 넘어진다. 밀당 같은 건 조금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싱커페이션syncopation 같은 쓸데없는 박자를 탈 때가 생긴다.


balance.jpg 균형의 미학 Shanghai Maxicheng 上海马戏城


평평한 길에선 올바른 발의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는데, 오르막이나 내리막 길을 걸을 땐 몸 전체에 감각을 세우고 이곳저곳을 적절한 각도나 위치에 놓아 버텨주어야 중력에 지지 않았다. 고집을 부리고 몸을 빳빳이 세워봐야 중심이 흔들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좋게는 솔직하고, 나쁘게는 직설적인 말투 탓에 오해를 사거나, 매몰찬 인간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감정을 살짝 밀쳐놓고 내던지는 나의 말들은, 간혹 어떤 이에겐 터부시 하고 싶은 진실이거나, 과한 참견이거나 했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일 보다 어려운 일이라, 감각을 익히고, 균형을 잡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여전히 상대에 따른 각각 다른 이해가 필요함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 사람의 성격과 감정선과 정도를 이해하고 대하면, 나는 말이 통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 무게 중심을 머리보다는 가슴에 가까이 두어야 할 때를 잘 파악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편인데 설거지처럼 유독 미뤄뒀다가 하게 되는 일들이 있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은반지들 사이에서 나에게 착 맞는 것을 찾는 일처럼 천천히 시간을 들이길 좋아하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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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 안에도 이렇게 몇 단계로 나뉜 속도가 있음에도, 어떤 결론도 내지 않을 거면서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를 보면서 괜히 내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내 심경 따위가 그녀의 선택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을 앎에도 자꾸 나의 의견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불편해서, 안 보고 말자, 어리석은 결론으로 치닫기도 했다.


아이와 걸을 때의 보폭과 속도처럼, 기다리고 발맞춰 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여러 번의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능숙하게 결론 지어주는 믿음직스러운 상사처럼, 앞서 나가야 할 때도 있는 건데. 개인차가 큰 만큼, 결국 비슷한 속도를 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남았다. 걸음이란 건, 혼자 할 때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균형과 속도와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근자엔 혼자 걷는 일이 많은 현실의 나는, 정작 그들 중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게 하고 있지 않다.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이상향의 균형이 흐트러진지는 오래되었고, 몸뚱이는 마음의 속도를 쫓지 못하고, 내가 제대로 된 길로 가고 있는지 매 순간 고민한다.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주제에 남을 졸라 속도를 내려고 했다는 게 어이없고 우습게 느껴진다.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 의 Blood on the fields 를 틀었다. 리듬을 따라 걷다 보면 밴드와 함께 멈칫 멈칫하게 되는 재미가 있어서, 걸을 일이 있을 때 일부러 틀곤 한다. 퓰리처와 그래미를 동시에 수상한 이력이 있는 이 곡은 아마도 대중적으로도 음악성으로도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었다고 공식적으로officially 인정받은 거겠지. 이런 삶이 있다면, 그래도 부러움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리저리 부딪히며 타인들과 함께 걷던 날들이 심적으로는 솔직하게 물질적으로는 좀 더 안정적이었나, 하며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오늘도 나의 다음 걸음이 제때에 땅을 디뎌 줄지, 조마조마하는 마음의 균형을 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