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

by Bluese


처음 상하이의 땅을 밟았던 날의 기억은 여러 번 돌려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특유의 끈적하고 회색빛이 도는 그런 5월의 한 날이었다.


한국을 떠나는 일은 순식간에 전개되었다. 졸업 후, 조금 늦은 취업 활동에 처음 본 면접 후, 이틀 만에 취업이 확정되고, 그로부터 3주 후 한국을 떠났다. 두고 왔다기엔 너무나 당연한, 한국에 있을 일상도 가족과 친구도, 이상하리만치 눈물겹지 않았다. 당장 눈앞의 신세계에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탓이다.


오래된 익숙함을 떠난 혼자만의 삶이 그렇게 시작됐다.

크고 탁한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의 창문으로 처음 만난 비에 젖은 상하이의 모습에, 난 이미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될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의 하얀색 페인트칠이 된 방에 간소한 짐을 풀고서야 실감이 났다. 방에는 찬기가 도는 흰색 형광등이 켜져 있었고, 한쪽 벽을 꽉 채우며 난 창에는 우기雨期에 일찍 온 어둠 위로, 단지 안 공원에 켜놓은 노란 가로등 불빛이 비쳤다.




2000년대 초, 장기臟器를 팔린다더라, 길거리를 걸으면 반은 소매치기라더라 하는 온갖 유언비어들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동갑내기 사돈처녀 덕분에 중국은 무법지대라는 이미지가 무색하게 엄마를 설득하는 일은 쉽게 해결됐다. 문제는 언어였는데, 쓰고 읽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버거울 정도로 시끄럽게 들리던 중국어는, 처음 한 달간은 도무지 적응 되지를 않았다.


태어나 처음 밟아본 외국 땅에서 인생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고, 일개 사원인 주제에도 나는 통역을 해주는 직원까지 한 명 지원받았다. 삶은 내버려 두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상하이 시내의 지도를 한 장 사고, 주말이 되면 도시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회사가 있던 한인촌에서 출발해 시내 중심으로 가는 버스에 일단 올라탄 후 마음에 드는 길이 있으면 고민 없이 내렸다. 발길이 닫는 대로 걷다가, 스타벅스나 맥도널드처럼 익숙한 간판이 보이면 들어가서 끼니를 때우거나 하며, 지도에 그날 걸었던 길들을 표시했다.

지도 위에 표시해둔 영역이 금세 넓어지고, 내가 사는 곳에서 동쪽으로 가야 멋진 곳들이 나온다는 사실과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프랑스 조계지라는 것도 알아냈다. 매주 계속된 혼자만의 여행은, 동시에 기본적인 중국어 회화도 가능하게 했다. 첫 동료들이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사람이 오고, 말단 사원이던 내가 대리가 될 때까지, 나는 차근차근 상하이를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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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동등하게 타지他地이던 곳에서, 대리가 과장이 될 만큼의 시간이 또 흐르고, 한인촌을 벗어나 스카이 라인이 보이는 도시 한복판으로 이사도 하고, 상하이가 낯선 이들에게 능숙해진 중국어로 가이드의 역할까지 충실히 해가며, 나의 첫 동거인이자 여전히 마음은 함께인 소울메이트도 만났다. 내 삶의 수많은 ’처음‘의 경험이 그곳에 있었다.


뱅뱅 돌아 집에 데려다 놓은 택시기사에게 말이 통하지 않아 평소의 두 배가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하지만 썩 현지인 같은 모양새를 하게 되었음에도 예외 없이, 마주한 일 없는 인생의 쓴맛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왔고, 나는 무뎌지고 익숙해져 갔다.


상하이를 만끽한다는 기분에 취해 갈 때쯤, 권태가 왔다. 새로운 경험들이 주는 즐거움으론 가려지지 않을 만큼, 오래되고 부피가 커진 피로감이었다. 특별한 고민 없이 그저 관심 있던 것을 전공 삼아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발판 삼아 취업도 하고, 한국을 떠나고. 그렇게 내 삶에는 크게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시작한 일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 중대한 결정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충분히 열과 성을 다했고, 때가 됐기 때문에 그만둔다는 이론에,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거라는 빛 좋은 변명거리까지 더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 속 뚱한 표정의 증명사진 아래엔 내 이름이 있고, 그 아래 '소설가'라고 장래희망이 적혀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소박한 희망이던 글쓰기는, 전혀 소박하게 꿈꿀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조금씩 써둔 글들은 고르고 골라야 한두 개 정도가 읽어줄 만했다. 어느 날의 것은 딱딱했고, 또 다른 날의 것은 심하게 감상적이었다.

작가 신청을 할 때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가능할까. 태어나 처음이라 함 직한 치열한 고민이었다. 평가를 위해 공개해야 했던 몇 개의 글들은 읽고 또 읽어보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더하고 빼고를 했다. 첫 시도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에 승인을 받았고, 기뻤다. 이르다는 걸 알지만 처음으로 고민 끝에 한 선택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한숨이 놓이고 말았다.


뭘 안다고, 그 나이에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꼬맹이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날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여기까지 살아오며 겪어온 수많은 처음의 경험들을 소중히 안고, 나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이 두려움 가득한 시작도 세월이 흐른 후에 또렷이 기억해질 것을 안다. 치열한 마음으로 하는 일이기에 예측 가능할 거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 순간을 성실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상하이의 날들처럼, 그렇게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