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는 길

2019년 10월의 습작

by Bluese


평소와 다름없던 어떤 날들 중에 한 날.

하늘이 말갛게 퍼런 속살을 내밀고 구름 한 점 걸치지 않고 있던 가을의 문턱.

해외에서 회사에 다니며, 동료보단 서로가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주며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 대화창이었다. 한참은 쉴 새 없는 수다들로 메신저 아이콘 머리에 빨간 숫자를 늘 달아놓고 있었는데. 그저, 한 동안 뜸해져 있던 어느 날.

너무 갑자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됐다며 부장님이 엄마의 부고를 전해온다.


나를 빼고는 모두 마흔 줄을 넘어 있는 언니들인데, 부고 소식은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여기저기 들을 일이 많았겠지 싶은 그녀들 조차도.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엄마이니까.


친구를 기다리며 카페에 앉아 있었고, 주변에서는 웅성웅성, BGM으로 깔려 있는 재즈 연주곡이 들릴 정도의 크기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들만이 들리고 있었는데.

귀에서 이명 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목욕탕에서 들리는 것 같은 습기 가득한 울림만 웅웅 거린다.


왜 이렇게 멍하니 있냐며 어깨를 툭 건드리고 친구가 맞은편에 앉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왔느냐며 말을 건네다 말고 눈물이 툭 떨어진다. 나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친구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지도 못한다.




옷을 단정히 챙겨 입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저녁엔 날이 싸늘하니 스카프라도 하나 챙겨 나가라는 엄마의 성화에 들고 나온 것이, 손에서 거추장스럽다. 꾸깃꾸깃 가방에 집어넣고, 마침 사람이 내린 빈 앞자리에 앉는다.

오늘따라 심하다 느껴지는 지하철의 덜컹거림은 사실 내 마음의 그것인 것도 같다.

입술이 바싹 말라 붙는다. 생전 안 하던 멀미를 하는 것처럼 머리도 어질거리며 아프다. 시원한 물이 한 모금 절실해, 플랫폼에 매점이 보이는 역에 무턱대고 내려버린다.


반쯤 마신 보리차 페트병을 손에 쥐고 구파발 역의 플랫폼에 앉아서 4대째 지하철을 지나 보낸다.

사실은 조금 겁이 난다.

그저 한 번, 어떨까,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가슴을 에도록 슬프고 죄스럽다 느껴졌던 엄마의 부재. 그런 그것을 현실로 맞닥뜨려버린 부장님을 마주하기가 무섭다. 나는 차마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조차 없을 감정인데, 어떤 말로 위로해야 좋을지, 아니 애초에 위로라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지.


머리를 저으며, 정처 없이 머릿속인지 마음속인지를 오가는 감정들을 떨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침 지하철이 들어선다.




가끔 친한 친구들과 술 마실 때나 한 대씩 얻어 피우는, 끊었던 담배를 한 갑 사본다. 육교 하나만 건너면 대형병원의 장례식장으로 바로 도착하게 되어 있다. 해가 짧아진 10월의 5시 즈음의 하늘엔 벌써 석양이 물들 채비를 하고 있다. 저 다리만 건너가면 되는데, 나는 또 잠시 멈출 구실을 찾아냈다. 깊은 한숨을 쉬듯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를 내뱉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 것도 같다. 이래서 내가 담배를 피웠었지 싶어 진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내가 상주라도 되는 것 마냥 파리해져 있다. 위로 둥글게 말아 올려 묶었던 머리를 풀러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바꿔 묶는다. 습관으로 주렁주렁 끼고 나온 반지들을 빼서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전 태운 담배가 신경 쓰여 양팔을 들어 킁킁거려보지만, 다행히 냄새는 없다. 어딘가 다른 곳에 어쩌면 같은 곳에 조문을 왔을 여자 두 명이 생전의 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화장실로 들어서기에,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2층에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한 부장님의 엄마의 빈소엔 가뜩이나 주눅 들어 있는 나를 위협이라도 하듯 고인을 애도하는 화환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신발을 벗어 어찌해야 하나 잠시 두리번거렸다. 조문은 12년 전 외할머니 장례 이후로 처음이라, 행동 하나하나가 스스로 거슬릴 정도로 어색하고 서툴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부장님의 엄마와 눈이 마주쳐버린다. 갑자기 울컥해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도 눈물을 참아낼 수가 없다. 눈 앞을 가득 채운 물기에, 정신없이 영정 앞에 놓인 국화를 집으려다, 이내 방향을 고쳐 하얀 도자기에 꽂혀 있는 것을 집어 영정에 올리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아주 처절한 기분이 되어서 기도를 한다.

꼭 편안하고 행복한 곳에, 좋은 곳에 가세요. 그리고 부장님 너무 많이 슬프지 않게 해 주세요. 너무 많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검은 상복에 하얗고 작은 리본을 머리에 꽂은, 여전히 뽀얀 피부에 동그랗고 따뜻한 눈빛을 한 부장님이, 와서 나를 안아준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어, 돈, 쓸모없더라.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고.

그래도 마지막에 함께 보낼 수 있었어서 너무 다행이었어.

해 드릴 수 있을 때 같이 있어 드리고, 여행도 다니고. 다 해 드려.

이상해. 아직 실감이 안 나네. 아직 모르겠어 그게 뭔지.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게.


여전히 덜컹거림이 심한 듯 느껴지는 지하철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부장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마지막 말이, 자꾸 가슴을 푹푹 찌른다.


밖은 어두워져 까맣게 변해 있고,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추위에 사람들이 오들 거리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곧 죽어도 택시를 타고 다니는 나를 보며, 몇 번이고 돈을 벌 때 아껴야지, 그렇게 펑펑 쓰면 어쩌냐고 잔소리를 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가져가라고 했던 스카프가 생각나 주섬거리며 꺼내 목에 칭칭 감는다. 순간 몸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 찬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응, 엄마의 사랑이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오는 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버린다. 어둠에 감춘 얼굴 위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엄마를 잘 보내 줄 준비도, 엄마가 떠난 후에 후회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




2020년 5월, 덧

갈팡질팡 하던 2020년의 봄이 거의 다 지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참 모자란 딸입니다.

오늘은 꼭, 엄마를 꽉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