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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e Sep 13. 2023

나는, 나방

떨림의 농도


까만 밤, 검게 변한 건물들과 나무들 사이에서 노랗게 반짝 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흔들거린다.

- 비가 오는 날이었다면 더 좋았을 걸

나도 모르게 아쉬움이 잔뜩 섞인 혼잣말을 소리 내어 해 버린다.

비 오는 날 밤의 가로등은 물기를 머금어 조금 서글프고 처량하고 따뜻하다. 그런 불빛을 쳐다보고 있자면 마음도 같이 동요되어 일렁인다. 서글픈 것도, 처량한 것도,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조금 이른 저녁에도, 비가 오는 밤에도, 눈에 전달되어 보이는 빛의 크기가 달라도 항상 같은 자리에 서서 어제와 동일한 양의 빛을 내고 서 있어 주는 가로등은 나에게 위로다.


그런 가로등의 빛을 쫓는 나방처럼, 나는 좋은 것들을 곁에 두려는 본능이 강하다. 좋은 사람들을 잘도 골라내어 곁으로 달려든다. 이토록 밝은 것들 옆에 붙어 있으면 그 밝음이 내게도 조금쯤은 묻어주지 않을까. 나도 조금은 더 환한 사람이 되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어쩜 이럴 수가 있는 거야? 나, 그래서 몇 번이나 미리 얘기했다고. 잘 감겨달라고

- 응, 그래. 미용실에서 너무했네. 화내지 마, 이리 와

내가 더 이상 칭얼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듯 얼굴이 가슴팍에 푹 묻히게 안아버리고 머리를 토닥거린다. 알았으니 이제 그만~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괜히 웃음이 난다. 안되는데, 웃음이 날 일이 아니다.


염색 비용에는 염색약을 잘 씻어내는 것은 포함이 되지 않은 건가? 미용실이라고는 1년에서 1년 반에 한 번, 머리를 자르거나, 자르면서 펌을 하러 가는 게 전부였던 내가 새치 덕에 두어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다니게 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이런 이유도 충분히 마음 쓰이는 일인데, 염색이란 것을 한 번 하고 나면 일주일은 머리가 간질거려 못 견디겠는데도, 별 수 없어- 하는 슬픈 마음까지 더해진다. 그러니까 애초에 미용실에 가는 일이 나에게 퍽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런 월간 염색을 마친 주에, 무의식 중에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내리며 '긁지 마아- 한 번 긁으면 자꾸 더 가려워' 나를 달래주는 남자. 그리고 다음번 염색의 시기가 돌아왔을 때 본인이 다니는 미용실에 같이 데려가 원장님께 특별히 머리를 '박박' 감겨달라고 신신당부하며 나를 맡긴다.


옆에 앉아있는 그 사람의 단정하고 깔끔하게 잘린 머리칼을 만지작거린다. 이번엔 머리 색을 조금 짙은 컬러로 했는데, 더 멀쑥하고 어려 보이기까지 해서 왠지 귀엽다고, 그러니 좀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사람을 어디까지 좋아해 버리고 말게 될까. 허다히 언급되듯, 거의 완벽하게 반대편의 것을 띄는 그 사람과 나의 색이 나를 그 사람에게 이렇게 끌리게 만드는 걸까.

남들보다 1초쯤 빠르게 오는 나의 화에 대비되듯, 그 사람의 화의 게이지는 늘 0에 가까워 때때로 경이롭다.


- 아이고 아저씨, 그러다가 사고 나요-

클랙슨을 울리는 대신 어린아이 타이르듯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동그란 눈을 하고 그를 쳐다봤다. 물론 앞 차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우리 차는 갑자기 들어온 그 '아저씨'의 차 뒤로 다시 여유 있게 거리를 만들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이 사람이 단 한 번도 운전을 하며 화를 내는 것도, 화를 참는 것도 본 일이 없다. 그저 다그치듯 왜 그러냐고 귀엽게 구시렁거리기만 한다.


매사에 똑 부러지듯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내가, 좋은 게 좋기만 한 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

- 화를 낸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다행히 내가 피해를 입지 않았고, 화를 내고 나면 내 기분만 더 나빠지잖아.

결국 원망하듯 어떻게 그렇게 화를 내지 않느냐고 물은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 본인이 화를 내야 할 대상과 상황에 대한 판단들의 데이터가 쌓여 지금의 습관이 된 것이었다.

눈앞을 뿌옇게 가리고 있던 기름종이를 떼어낸 것 마냥 그에게 달라드는 내가 이해가 되었다. 내 몸하나 기꺼이 던져, 타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이 빛 주위를 온종일 날며 절대로 떠나지 않을 나방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그의 빛으로 위로를 받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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