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초여름의 휴일 오전이었다. 블라인드로 스며드는 따뜻한 해의 빛과 미풍을 틀어도 바람이 강한 선풍기가 왱왱 돌아가는 소리만 작은 방 안에 가득했다.
필터를 씌운 듯 노오란 빛을 뿜던 그 방 안의 침대 위에서 당신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 조금씩 거뭇거뭇 올라오는 인중과 턱의 수염 자국들, 운동을 아무리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뽀얀 팔과 선풍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거리며 춤추는 갈색 머리칼.
얇은 색연필로 세심하게 그려놓은 한 장의 일러스트처럼 그 사람이 나의 액자 안에 들어와 있다.
그는 때로,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담긴 잔잔하고 리드미컬한 로파이lo-fi 음악이 되고, 이파리들이 촘촘히 하늘을 가린 비자림의 이슬 맺힌 향기가 되어 내 코에 닿는다.
나의 애정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엔가 뭉뚱그려져 한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형상이 되어 간다. 나를 자극하는 것도, 편안히 하는 것도, 숨 쉬게 하는 것도, 그래서 모두 그 사람의 일이 되었다.
그러자니 그는 내 속에서 늘 바삐 다닌다. 눈에도, 귀에도, 가슴에도, 머릿속에도 하루종일을 밤낮도 없이 쏘다닌다. 내가 잠이 들어야 비로소 내 안의 그도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고요한 자장가를 불러 나의 잠든 시간조차도 평안하게 만든다.
살아온 시간만큼 사랑도 성숙했다. 나의 철든 사랑의 경험 끝에 그 사람이 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함께라 별 볼일 없는 나의 매일이, 하루하루가 모두 특별한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난다. 아침마다 나누어 먹는 사과 하나가 입안 가득 과즙이 넘실거리는 꽃밭이 된다.
그렇게 그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 주면서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애호하는 모든 것이 되어준다. 내게 모든 경험을 가져다준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예찬하듯 떠오르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들이, 반짝거리며 까만 밤 같던 나의 하늘을 대낮처럼 비춘다. 그래서 그 별엔 영원히 밤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더라는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