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se Jul 07. 2023

나의 애호하는

2023년 여름


초여름의 휴일 오전이었다. 블라인드로 스며드는 따뜻한 해의 빛과 미풍을 틀어도 바람이 강한 선풍기가 왱왱 돌아가는 소리만 작은 방 안에 가득했다.

필터를 씌운 듯 노오란 빛을 뿜던 그 방 안의 침대 위에서 당신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 조금씩 거뭇거뭇 올라오는 인중과 턱의 수염 자국들, 운동을 아무리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뽀얀 팔과 선풍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거리며 춤추는 갈색 머리칼.


얇은 색연필로 세심하게 그려놓은 한 장의 일러스트처럼 그 사람이 나의 액자 안에 들어와 있다.

그는 때로,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담긴 잔잔하고 리드미컬한 로파이lo-fi 음악이 되고, 이파리들이 촘촘히 하늘을 가린 비자림의 이슬 맺힌 향기가 되어 내 코에 닿는다.


나의 애정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엔가 뭉뚱그려져 한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형상이 되어 간다. 나를 자극하는 것도, 편안히 하는 것도, 숨 쉬게 하는 것도, 그래서 모두 그 사람의 일이 되었다.


그러자니 그는 내 속에서 늘 바삐 다닌다. 눈에도, 귀에도, 가슴에도, 머릿속에도 하루종일을 밤낮도 없이 쏘다닌다. 내가 잠이 들어야 비로소 내 안의 그도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고요한 자장가를 불러 나의 잠든 시간조차도 평안하게 만든다.


살아온 시간만큼 사랑도 성숙했다. 나의 철든 사랑의 경험 끝에 그 사람이 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 특별한 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함께라 별 볼일 없는 나의 매일이, 하루하루가 모두 특별한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난다. 아침마다 나누어 먹는 사과 하나가 입안 가득 과즙이 넘실거리는 꽃밭이 된다.


그렇게 그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 주면서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애호하는 모든 것이 되어준다. 내게 모든 경험을 가져다준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예찬하듯 떠오르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들이, 반짝거리며 까만 밤 같던 나의 하늘을 대낮처럼 비춘다. 그래서 그 별엔 영원히 밤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더라는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이전글 뻔한 로맨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