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계속 우중충한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해가 길어진 초저녁의 하늘이 어제보다 눈에 띄게 어둡다. 6월 초의 날 치고는 퍽 싸늘한 공기엔 습기가 가득하다. 비가 올 줄 알고 들고 나온 우산을 거추장스럽게 하루 종일을 손에 쥐고 다녀야 했지만, 아직 선선한 공기가 기분 좋다.
비를 좋아하는데, 비가 오기 전, 비가 오는 동안, 비가 갠 후, 각각 다 다른 이유들을 갖는다. 남들은 그리 싫다는 비가 오기 전의 꿉꿉함을 좋아한다. 좋아하기까지 한다니, 왠지 변태스러워 보이지만. 정확히는 그 꿉꿉함이 아니라, 그 불쾌함에 가까운 기분이 곧 비에 싹 씻겨 내려갈 것을 기대하는 일이 좋다. 습기를 없애기 위해, 여름의 방안에 틀어놓은 보일러에 후텁지근하게 올라올 온기도 좋다. 그런 날에 빨래를 하면 보일러를 틀어 따뜻해진 방 안에 널어놓게 되는데, 그 덕에 집에 들어갔을 때 섬유유연제의 향긋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할 것을 기대하는 일도 좋다. 손을 대면 살짝 들러붙었다가 떨어져 나오는 것 같은 몸의 끈적거림을 시원하게 씻어 내릴 샤워를 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설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좀 이상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긴장감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비는 꽤 솔직하고 양심적이다. 그것이 올 땐, '나 이제 간다'라고 갖가지 방법으로 선전포고를 한다. 그럼 난, 아, 곧 오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그런 설레는 마음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해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보일러를 켜 두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두고.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매 순간이 살얼음판 같은 것이 아니라,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긴장감엔 기분 좋은 짜릿함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 미국에서 바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시즌이 있었다. 그도 아니면 중국의 긴 연휴 동안 미팅을 하기 위해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바빴던 건 그 시즌이 되기 전, 한 달가량 되는 시간이었다. 차트를 정리하고, 문제가 있는 건은 없는지 모든 작업 내용들을 확인하고, 꼭 상담하고 결정지어야 할 일들을 다시 한번 되짚고, 새롭게 제시해야 할 샘플들을 개발하고.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그 시즌 중에 가장 바빴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떠올려보면 그때가 가장 즐겁게 일에 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은, 불과 며칠에서 일주일 가량이 지나고 나면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잠잠해졌다. 확정된 일들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분배해주고, 업체들과 계약을 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저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전과 다르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하며 매일이 지나갔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예고만 해준다면, 최선을 다해 그 순간을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생각해 보면 예고되지 않았기에 힘든 일들이 훨씬 많았었으니까. 누구에게나 언제든 올 수밖에 없는 거라면, 아주 긴 여지를 줄 수는 없다 한들, 그저 하루뿐이라도 마음이라도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좋겠다고. 그러나 야속하게도 예고되지 못한 사건 사고들은 번번이 불쑥불쑥 머리를 쳐들고, 그럼 바쁜 마음이 되어 플라스틱 망치로 어디인지 제대로 확인을 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여기저기를 두들겨 패게 되고 했다.
과연 예고가 되었던 일들은 모두 잘 헤쳐나갔던 것일까, 그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어떤 일들은 알지만 내버려 두기도 했고, 어떤 다른 일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정면으로 들이받아야 했을 때도 있다. 결국 내일 비가 오건 말건 예쁜 흰 드레스에 높고 얇은 하이힐을 신고 나갈 거라고 결정했던 건 나의 의지였다. 그 결과가 누군가의 잣대로는 실패에 가까운 것일 지라도, 그래서 남들이 보기엔 '내 저럴 줄 알았지' 하게 되더라도. 무엇이 닥쳐 올 지 미리 알았던 내가, 그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겪기로 결정했다 라면 그저 그뿐인 것으로 끝이었다. 사람은 모두 다른 경계선을 갖고 살아가고, 그들 모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밥을 먹으니까. 눈을 뜨자마자 하루의 시작을 밥 먹는 행위로 하던, 정신을 차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나서야 밥을 먹던, 혹은 아침은 그냥 걸러버리고 브런치를 먹는 편을 선호하든 간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일기예보에도,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에 오는 아침의 공복에도, 결국 어떤 하루를 맞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본인의 역할이다.
점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적어도 한 두 번은 갔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작 나는 내 미래를 막연하게 점치는 그곳에만은 가지 않게 된다. 이미 정해져 있다 라고 가정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그런 얘길 한다. 그게 뭐든지 간에, 결국 그곳에서 듣고 나온 말들이 현실이 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니, 결국 점을 쳐주는 무속인도 그저 본인의 방식으로 일기예보를 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올 듯 말 듯하던 비는 묘하게도 내일까지도 오지 않고 지나갈 듯하다. 내일 낮 시간엔 해님이 구름 뒤에 반쯤 가려진 것이 그려져 있다. 온몸으로 비가 올 것을 예상했던 오늘은 결국 허무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다시 공기에 습기가 가득 해지는 날이 오면, 나는 또 설레는 긴장감을 안고, 일기예보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럼 또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할 테지만, 그래도 행여 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마음을 준비하며 비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