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공중전화

연애 동화

by Bluese


아직은 아스팔트 위로 한낮의 열기가 조금 올라오고 있는, 하늘이 파랗고 가깝게 느껴지는 가을날이었습니다. 한두 해 전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반나절 정도 머물렀던 지방의 작은 동네슈퍼 앞에서, 녹슨 철제 받침대에 올려져 있는 바래다 못해 하얗게 변해가는 민트색의 공중전화를 발견한 것은.

괜스레 그리움이 사무쳐 당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어 져서 급히 동전을 바꾸어 넣어 놓고 보니 기억이 나는 번호가 어느 옛날 첫사랑의 삐삐 번호 정도. 귓가엔 수화기 너머로 삐- 하고 교환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전화번호나 삐삐 번호라면 으레 외워야 했던 시절엔 기억하는 번호가 적어도 서른 개 정도는 되었던 것 같은데, 휴대폰이라는 놈을 사용하다 보니 전화번호를 외우는 뇌 기능은 이런 게 용케 구분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pay phone.jpg 응답하라 1994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 그래도 어린 나이치고는 꽤 긴 시간, 썩 연애다운 연애였습니다. 주말이 되면 종로로 나가 영화를 보거나 명동에 좋은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눴고, 당시 대학생들이 간다는 피맛골의 전집에 가서 대학생 행세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삐삐가 한창일 때라 집 근처 문방구 앞에 붙어 있던 새빨갛고 작은 공중전화에서 날이 어둑해져 갈 때까지 서로에게 음성을 남기거나 듣는 일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의식 같은 것이었죠.

몇 해 전, 외국에서 한국으로 놀러 온 친구의 호텔이 그쪽이라 오랜만에 피카디리 앞을 지나게 됐는데, 예전 모습은 전혀 남지 않은 생소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침울해져 버렸습니다. 피맛골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타지에서 봤을 땐 말할 것도 없이 눈물이 날 뻔했고요.


당연히 있어 줄 줄 알았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봅니다. 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여겨지는 변화에 대한 관대함에 비해,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죄의식은 쉽게 등한시되는 걸까요. 그것의 소용에 아주 관계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 나름의 의미로 그대로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은 것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고장이 났겠다 싶을 만큼 낡은 민트색 공중전화를 마주친 것으로, 오래된 기억을 향수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상하이에 가끔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 들르던 카페는 1900년도 초에 지어진 건물에 조용히 들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소리를 온몸으로 내는 계단들과 그 시절의 유행이었을 붉은빛을 한 나무 창틀이 크게 변한 것 없이, 요즘의 것인 에스프레소 머신과 함께 자리 잡은 모습은, 노랗게 바랜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도시의 곳곳에 50년이나 70년이 지난 오래된 건물들은 남자 친구가 연주하던 재즈바로, 특별한 날에 가곤 하던 고급 레스토랑이나, 소소한 수제품들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가 되기도 하여 오랜 감성을 지닌 채 현대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래된 것과 조화롭고 사이좋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훌륭한 샘플들이 참 많은 도시였어요. 아마 그래서 더 그곳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DC12043.JPG YongFu Elite, @ French concession, Shanghai




첫사랑은 음악을 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첫 연애가 남긴 위대한 유물이라 여겼던 컬렉션이 있었어요. 당시 한참 유행하던 컴필레이션compilation 앨범의 이름을 따, 그 사람 이름의 끝 글자를 넣어 xxx's hits라 이름 짓고, 매달 즐겨 듣던 음악 중에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들을 모아서 1집, 2집, 3집으로 이어지던 것이 11집까지 있었고, 겨울엔 Christmas collection으로, 여름이 짙어지는 어느 날엔 Jazz & Blues 앨범으로 만들어진 카세트테이프를 선물 받았습니다. 긴 첫사랑이 지나가고, 다른 사랑을 하면서도 그것만큼은 버릴 수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건 말 그대로 유물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내 첫 연애의 장면 장면에 깔렸던 BGM이었고, 첫사랑 그 사람에겐 그 나름 인생의 첫 앨범 제작의 포트폴리오와도 같은 것이었죠.


해외에 오래 나가 있는 동안에 엄마가 이사를 했습니다. 가끔 한국으로 들어오면 수시로 정리를 하기도 했고, 필요한 것들은 들고나가기도 했던 터라, 엄마의 집엔 사실상 내 짐이 거의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컬렉션을 통째로 내다 버렸습니다. 내 첫사랑의 역사는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의 손에 의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오랜만에 만난 엄마를 반가워할 새도 없이 얼마나 원망하며 대성통곡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정도의 의미만으로는 세상의 온갖 것들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비밀스러운 각자의 이야기들을 품은 채 그저 존재하게 둘 수는 없는 걸까요. 그냥 오며 가며 문득 고개 들면, 그리운 과거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낯익은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데. 그 정도의 사치도, 요즘 같은 시대엔 기대할 수 없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팬데믹pandemic을 겪은 세계는 오래도록 당연시되어 오던 것들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일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휴대폰이 나타나며 소리 소문 없이 슬그머니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세상의 모든 공중전화들처럼,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일상의 것들이 검은 별 마냥 나타났다 사라져 갈까요.


나는 언제든 과거의 연애들을 끄집어내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아요. 아주 완벽한 사랑도 이별도 아니었겠으나, 그 제각각의 무수한 추억들과 경험들 속에서 내 현재의 사랑이 이만큼 커다랗게 자랄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탄생한 곡인 바니 윌른Barney Wilen 의 Melodie pour les radio-taxis가 흘러나옵니다. 이 오래된 음악은 21세기에 보스bose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현대인에게 소모되고 있습니다. 나는 겪을 일 없을 30세기라던가, 그도 더 지났을 세대에 ‘21세기’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남겨질 것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들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스펙과 배경만을 보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카테고리의 어디 즈음엔, 빨갛고 파랗고 하던 플라스틱 공중전화가 있는 내 낡은 시간도 그리움을 안고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