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던 엄마, 꽃을 좋아하는 딸

by Bluese


운이 좋게도 나에겐 스트레스를 해소할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맘이 맞는 친구와 밤이 새도록 대화 나누기

시야가 탁 트이고, 초록색이 가득한 곳으로 여행하기.

마카롱, 로이스Royce의 초콜릿 감자칩 같은 달달하거나 단짠단짠 한 것들 흡수하기.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푹 가라앉은 재즈나 클래식 듣기.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그 속에 파묻히고야 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책 읽기.

온 힘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모아 4시간이고 6시간이고 노래 부르기.


이것들은 언제고 어김없이 나의 스트레스를 멀리 보내주었는데, 이 중 어느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정도로 쌓이고 쌓여, 이러다 죽겠다 싶었던 때가 왔었다. 병원에 가는 일은 잦지 않아서, 의료적인 차원에서의 중국 생활이 딱히 불편하게 다가왔던 적이 없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자가 진단을 했으나, 제 아무리 중국어를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더래도 심리 상담을 제2의 언어로 하는 것에는 부담도 염려도 컸다.




그렇게 회색 도시가 검정에 가깝게 변해가는 날 들이 이어지고 있던 중, 집 근처의 밴드 연습실에 갈 일이 생겼다. 이전에도 한 번 밤에 갔던 일이 있었는데, 주말의 한낮에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기분전환의 일환으로 남자 친구의 재즈밴드 공연에서 한 곡 부르기로 했던 터라, 다른 연주자들과 처음 맞춰보는 연습에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밤에는 오래되어 계단이 삐걱거리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건물이었는데, 한낮의 그곳은 도착하기 100m 도 더 전부터 온갖 꽃과 풀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설마 하고 건물로 다가서자 1층, 새하얗게 켜진 형광등 불빛 아래로 알록달록한 꽃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 이곳에 이런 꽃 시장이 있는 것을 전혀 몰랐지.


연습이고 나발이고 꽃 시장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마음을 꾹 누르고 본연의 역할을 하러 2층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삐걱거리는 소리에 맞춰 마음에 들썩거리며 설렘이 일기 시작했다.


회사로 가는 길목에 풍성하게 피어 있던 매화


어린 시절 언니의 손을 잡고 정확히는 엄마의 손을 잡은 언니의 손을 잡고 새벽 꽃 시장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격주로 교회 꽃꽂이 봉사를 하시던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그 새벽에 꽃시장엘 갔다. 작게 입김이 보였던 것 같은 느낌으론 이른 겨울쯤이었나. 후에 이혼한 부모님은, 당시엔 겁 많고 여리던 엄마 덕에 공개적으로는 사이좋은 부부였다. 되짚어 생각해보니 아마 그 날은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날이었고, 엄마는 작은 우리 둘을 차마 집에 두고 나올 엄두가 나지 않았으리라.


화려한 컬러들을 뭉개듯 그려놓은 유화.

기억 속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꽃들의 모양새는 기억나질 않고, 갖가지 화려한 색들과 색만큼이나 다양하게 마구 섞여 코가 아플 만큼 짙었던 향기들. 그리고 스케치해둔 디자인을 꼼꼼히 살피던 엄마의 눈빛과 바쁘게 돌아가는 시장 속에서 행여 길을 잃을까 언니 손을 땀이 나게 쥐고 있었던 촉감의 기억.


- 이건 플라타너스 나무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야.

나의 엄마는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어디를 여행하든, 그저 집 앞 도로를 걷다가도 풍경 속에 담겨있는 나무나 풀, 꽃들의 이름을 알려주며 향기를 맡게 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고 했다. 그런 영향도 또한 없지 않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회사 생활이 13년 차에 들어섰던 해, 말라비틀어져가던 마음이, 집에서 멀지 않은 꽃시장을 발견하고 그다지도 들썩였던 것은.




조용하게 어수선한 목소리들에 감싸인 꽃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둘러보았다. 새하얗고 동그란 퐁퐁과 소국, 스프레이 장미, 유칼립투스, 오묘한 파란색이 특이한 에린지움eryngium을 고르고, 옆에 화기 파는 가게에도 들러 하얀 것으로 하나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꽃들은 찬 물을 받은 유리병에 꽂아 물을 올리고, 싱크대에 따로 물을 받아 플로럴 폼을 담가놓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지내고 있던 27층 아파트의 창밖에 펼쳐진 빌딩들, 지하철역, 공사장에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쿵쿵거리거나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 같은 것을 들으며, 전에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꽃들이 찬물 안에서 다시 생기를 띄기 시작하고, 물을 잔뜩 머금은 플로럴 폼이 가라앉자 자리를 잡고 꽃을 꽂았다. 고민 없이 자르고 꽂기를 반복하며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남아있던 화 들이 조금씩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


My very first flower arrangement


처음으로 꽂아 본 꽃 사진을 엄마에게 메신저로 보내주었을 때, 엄마는 예쁘네- 하면서도 요즘에 일이 많이 힘드니? 라고 말을 이었다. 마음이 철렁했다. 소녀 같던 나의 엄마도, 당신의 삶이 버거웠던 어느 때에 꽃을 꽂는 행위로 말라버린 마음에 위로를 삼았던 것이리라.

그렇게 불쑥 고개를 쳐든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엄마가 안쓰럽고 아팠다. 너무 어렸기에 마음을 나누지도, 위로를 할 수도 없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은 과연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마른 장미 가시에 무방비한 상태로 손 끝을 찔린 것 같이 아린다.




실로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하는 생활 속, 여러 차례 인내심을 시험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머리칼이 회색인 할머니가 되었으니, 엄마의 세월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데도, 참아지는 일이 열 이면 그중 한 번은 꼭 성질대로 해버리는 일이 생기고 만다. 꽃을 좋아하던 엄마의 집엔 꽃이 피지 않는 산호수 화분만 하나가 있다. 꽃나무를 키워보지 그래요 하는 내 말에 엄마는 귀찮다고 대꾸한다. 조화처럼 바스락거리는 이파리들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엄마에게 괜히 섭섭한 마음이 된다.


꽃을 좋아하던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일도 귀찮아질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속상한 마음에 오기가 생겨, 꽃 화분을 하나 사다가 내가 예쁘게 잘 키워 보여야지 하다간, 또 엄마에게 복작거리는 마음은 이젠 없는 걸까 싶어져, 조금은 흡족한 기분이 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