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se Sep 27. 2021

앎의 공포

2021.9.27


하얀, 정말 말 그대로 하얀 안갯속을 걸었다.

다섯 걸음 밖의 것들은 차마 상상도 안될 정도로

밀도가 높은 안개.

몇 발짝 걸음에 머리칼과 눈썹 위로 내려앉은 물기.


시야 안으로 불쑥 드러난 검은 형체에 놀라

공벌레처럼 말려버린 몸을 억지로 곧게 펴고 

걸음의 속도를 내보지만

사그라들지를 않던 가슴의 떨림.


 곁을 30cm 남짓한 틈을 두고 유유히 지나간 사람이 

연세가 있어 보이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돌돌 말린 마음이 펴졌다.

불확실한 것들에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여태 확실한 결론 따위

내 곁에 머물러 본 일이 없는데도.

점점 빼곡해지는 안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다음 걸음이

움츠러든 마음을 곧추 세울 수 없게 한다.


옆 차량들의 방향지시등에 눈길을 줄 여유 따위 없었던

운전 시작 후 처음 몇 주.

옆으로도 눈길을 둘 재간이 생기고 나니,

방향지시등 없이 치고 들어오는 차들에

놀라고, 화도 치민다.

보지 못할 때엔 신경이 쓰이긴커녕 

나의 운행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던 일이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그보다는 아는 만큼 두려움이 커진다.

매일 해가 넘어가고, 하루만큼 더 살아내고 나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지고 마는 일들이 태반이고

몰랐으면 좋았을 감정들도, 후회도, 실패도 늘어만 간다.


확신이 드는 것들만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

모호한 것들을 경계한다.

그런 태도가 나를 정지시킨다.

 파란불이 켜질 것을 아는데도,

꼼짝을  수가 없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의 끝, 그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