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근처에 꽤 흔한 ‘씨’들이 있다. 눈을 뜨면 블라인드를 걷고 작은 발코니 창을 열어 본 날에는 씨가 있다. 그날의 씨를 하늘에서 세상으로 뿌린다. 흐린 날의 씨, 맑은 날의 씨, 비가 내리는 날의 씨, 눈이 오는 날의 씨를 뿌린다. 날씨는 날의 씨이다. 날,씨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정말 그럴 것만 같아서 매일 아침 욕실 거울 속에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생각이 현실이 되고 내가 하는 말이 나를 만들며 내가 하는 행동이 나를 그곳에 데려다준다.’ 아침부터 여러 씨를 만났다. 이렇듯 나의 글에도 씨가 있다. 글씨는 글의 씨이다. 글,씨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창을 열어본다. 아직 누구도 무엇도 다녀가지 않은 눈 덮인 벌판 같은 새-하얀 곳에 글의 씨를 심는다. 첫 문장을 쓰는 건 꼭 눈밭 위로 검정 발자국을 남겨가는 것만 같다. 첫 발자국을 지나서 검정 발자국이 계속된다. 그렇게 글,씨를 심어간다. 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반듯이 이어진 발자국들 사이에 비틀거리며 걸어온 상념의 발자국도 놓여있다. 흰 공간에 빼곡하게 뿌려졌던 글,씨는 다가오는 어느 계절에 무엇으로 피어날까.
나의 글들은 무엇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아지랑이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봄의 꽃들 사이에서 나의 글도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말만 씨가 되지 않게 심어놓은 글,씨가 글이 되고 씨로 끝나지 않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낼 수 있게 여러 날,씨들은 거들어 줄까.
나의 글은 향하는 곳이 있다. 나의 글은 늘 누군가를 향했다. 한 사람을 향했었고 때로는 머릿속에서 흘러나와 다시 나에게 되뇌는 시린 다짐이곤 했다. 나의 글은 닿고 싶은 곳이 있다. 그리움이 데려온 사람에게 닿고 싶다. 나의 글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창가 옆자리 같은 앉고 싶은 자리가 있다.
바람이 있다면 나의 글이 사람 지나는 거리 돌 틈에 뿌리 내려 꽃 피운 민들레처럼 잠시나마 오가는 사람들 눈길 잡고 발길 멈추었으면 한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 오지 못하면 어쩐다. 그때는 내 숨 불어 그대에게 보내줄게. 내 숨에 민들레 홀씨 퍼트려 그대에게 꼭 보내줄게. 곁에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가 잠시 어두워진 그대 주변 밝히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게. 내가 깊은숨 불어 보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