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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글을 쓰자, 남편이 달라졌다

다소 진지한 금주 선언과 글쓰기 효과에 대한 감정적 고찰

by 소피아

지난 주 브런치에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꼴보기 싫은 아침'이라는 글을 올렸던

바로 그날 아침,


남편은 술 마신 다음날의 전형적인 상태였다.


속은 쓰리고, 눈은 퀭하고

정수기를 붙잡은 채 물을 벌컥벌컥.

꿀물 한 잔을 건네자

몸둘 바를 몰라 하며 꺼낸 말.


“아 진짜... 이제 술 그만 먹어야지...”


십 년이 넘도록 듣고 있는 그 말.

계절이 바뀌듯

술 끊는 선언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봄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금세 사라지지만.


"자기가 술을 끊는다구?"

차가운 분노를 누르며 반문하고는,


뭔가 이 사람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 때문에

잠시 화색이 돌면서

"...개가 떵을 끊지~" 해버렸다.


앗.

감정이 속도 조절을 못하고

말 끝에 'ㅋㅋ'까지 붙어서...

개와 떵이 유쾌하게 튀어나와버렸다.


그런데 그날 이후
첫 연재 글이 의외의 반응을 일으켰다.

조회수는 꾸준히 올라

수 천 명 이상이 글을 읽었고
댓글은 따뜻하고 통쾌했다.


나 역시도

독자들의 반응을 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지만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감정의 선이
분명히 느껴졌다.


포기는 유머가 되고
분노는 연대가 되어

나는 조금 더 우아하게
감정을 소화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것 보라며,

약간은 들뜬 마음을

그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그리고 어제,

남편이 조용히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의 깨톡 프로필엔

금주 D+8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호라..?


그동안 공갈 선언만 반복하던 사람이

이렇게 대외적으로 금주를 선언하다니.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브런치에 글을 쓸 걸.
(말 끝에 다시 'ㅋㅋ' 등장)


하지만 감정적 사모님은
그저 웃고만 있지 않는다.

'우아한 레이저' 눈빛 기술을

은밀하게 발동한 채
남편의 금주 여정을 관찰, 응원 중이다.


부디 건강을 생각해서

그의 금주 기록이

D+8에서

D+88을 지나
D+128까지 쭈욱 이어지기를..!


그리고 내 브런치도
조금씩, 조금씩

더 단단하게 자라나기를.




감정적 사모님의 심심한 사과 말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꼴보기 싫었던 아침에 튀어나온


“개가 떵을 끊지~”


이 발언에 대해,
감정의 폭주를 잠시 인정하며

공식적으로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의외로 대단했다는 점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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