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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Jul 05. 2020

매일 퇴사할 것처럼

멋진 퇴사를 위한 준비

누구나 퇴사한다. 시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모두 언젠가 퇴사한다. 누군가는 이직을 위해, 누군가는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또 누군가는 은퇴를 위해 퇴사한다. 모두 각자의 이유로 회사를 나가지만, 나갈 때의 얼굴은 모두 다르다. 구조조정으로 쫓겨나는 사람은 표정이 어둡고 침울하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회사 문을 나선다. 반면에 오랜 기간 준비했던 일을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은 당당하다. 힘차게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간다. 이들의 얼굴에는 시작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어떨까? 내가 회사 문을 나설 때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아니면 허리를 당당히 펴고 웃으며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멋진 퇴사를 꿈꾼다. 쫓겨나듯 떠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퇴사하고 싶다. 허리를 펴고 웃으며 떠나고 싶다. 출근하는 마지막 날, 모두가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그런 모습으로 당당히 회사 문을 나서고 싶다.

하지만, 추상적이다. 멋지고 낭만적인 퇴사를 꿈꾸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사실, 이후에 겪게 될 일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몇 배 이상 힘들고 고단할 수 있다. 휴일도 없고 쉬는 날도 없이 여행 한 번 다니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불 밖 세상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나도 여러 번 퇴사했다. 대부분은 이직이었지만, 딱 한 번 내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둔 적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입사한 건축사무소를 나갈 때였다. 당시에는 회사 일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고,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었다. 저녁도, 주말도 없는 삶을 살았다. 학교에서 배우던 건축과 현실의 건축은 갭이 너무나도 컸다. 내가 고작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들어온 건가 싶었다. 때마침, 비슷한 고민을 하던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몇 달 간의 고민 끝에 각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회에 기여하고 도움이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고민은 많았지만, 막상 퇴사하니 먼저 무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뭐라도 될 것 같았다. 충동적이고 무모했다. 어설프게 꿈만 꿨다. 우린 젊었고, 고생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준비되어 있다 착각했다). 하지만 계획은 없었다.

계획이 없어서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야말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는 상사가 시켜서, 일이 주어져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막막했다. 오늘 뭘 하고, 내일 뭘 하고, 다음 주, 다음 달에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길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겠다는 생각은 좋지 않다. 충분히 젊고,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찾으면  되지 않냐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나가면, 느낌이 다르다.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조급함을 부른다. 조급함은 가장 큰 적이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조급한 마음으로는 제대로 이룰 수 없다. 여유롭게 퇴사 이후 삶을 준비하려면 퇴사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1년은 필요하다. 길면 길수록 좋다. 오랫동안 준비할수록 실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스스로 검증했기 때문에,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불안함이 적다.


또한, 주 수입원이 사라졌기 때문에 쓰는 만큼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든다. 줄어드는 잔고를 바라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절한 수입원 없이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은 쫓기는 마음 때문에 결국,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퇴사했을지 몰라도,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커진다. 건물이 있고 주식이 많아 금전적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절한 수입원은 필수다. 목표를 위한 비용과 생활비를 사용하고도 쪼들리는 느낌은 없어야 한다. 사람 마음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 생각해보자. 오늘 잠들면 내일부터는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한다. 무얼 하든 자유다.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고 선택해서 할 일을 정해야 한다. 이제는 그 그 누구도 당신에게 할 일을 정해주지 않는다.


믿을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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