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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pr 12. 2020

7주간의 재택근무로 얻은 것과 잃은 것

언제 끝날지 모른다



7주간의 재택근무로 얻은 것


1. 살


수개월간 식단 조절로 아쉽게(?) 이별했던 녀석들이 다시 돌아왔다.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도 몸무게 앞자리가 바뀐 충격이 눈에 선하다. 나잇살이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피로에 찌든 모습도 싫었다. 젊을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가볍고 활기찬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절반씩 먹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했던가. 수개월간 지속하고서 예전으로 겨우 돌아왔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망했다. 먹는 건 같은데, 예전만큼 움직이지 않으니 점점 살이 오른다. 이전에는 하루에 최소 5,000보는 걸었다. 지금은 500보쯤 될까? 움직임이 확연히 줄었다. 침대, 책상, 거실, 화장실, 주방이 생활 반경의 전부다. 그렇다면, 음식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늘면 늘었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뭐가 허전해서 그런 걸까? 하루에도 애꿎은 냉장고만 수십 번 열었다 닫는다.



2. 우울감


우울감이 찾아온다. 우울은 오랜 전부터 함께하던 감정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이전에는 어떤 허무에서 비롯된 우울이라면 이번에는 자유의 제한이 만든 우울이다. 마음껏 볕을 쐬지 못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한다. 두통과 어지러움을 달고 산다. 안 먹던 두통약을 먹는다. 청소하고 환기해도 마찬가지다. 환경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 마음이 이런 걸까?

요즘 내 하루 일과는 이런 식이다.


일하기 10분 전에 일어난다. 커피를 내린다. 며칠 전에 산 빵을 주워 먹는다. 새벽 1시가 넘어 잠이든 아이는 일어날 기색이 없다. 11시는 넘어야 일어날 테지. 아이가 일어나기 전이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바짝 일해야 한다. 덜 깬 잠은 커피로 메꾼다. 11시다.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아침을 챙겨준다. 아침이라 해봐야 빵, 시리얼, 또는 과일이 전부다. 수 없이 부르는 아빠 소리에 대꾸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밥하기 귀찮아 김집사(심부름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다. 김밥이나 볶음밥 같은 음식을 시킨다. 아이와 둘이 같이 먹어야 하니 선택의 폭이 좁다. 잠시 휴식. 소파에 누워 쉬거나, 아이와 함께 동물의 숲을 한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아이는 계속 게임하거나 TV, 유튜브를 본다. 거의 하루 종일 본다. 아이를 방치하는 느낌이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렇다고 일을 놔두고 마냥 놀아줄 순 없다. 저녁이 되고 와이프가 돌아온다. 이미 나는 지쳤다. 하지만, 와이프도 마찬가지. 집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쉽지 않지만, 출퇴근하며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둘 다 피곤하다 보니 날이 서 있고 예민하다. 자주 다툰다. 하루를 넘기기 쉽지 않다. 어서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3. 술


술 마시는 횟수가 늘었다. 나쁜 신호다. 많이 마시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술 마시는 핑계는 다양하다. 출근 안 해 마시고, 울적한 마음에 마신다. 와이프와 화해하느라 마신다. 그리고, 와인이 맛있어 마신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와인 맛에 눈 뜨고 있다.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횟수는 줄여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아직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술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면 여러모로 문제다. 깊이 잠들지 못해 항상 피곤하다.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다. 뭔가 찌뿌둥한 느낌. 또한, 위에도 치명적이다. 잦은 음주는 역류성 식도염 등 위와 관련된 질환을 유발한다. 안 그래도 커피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사는데, 술까지 더하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다. 습관성 음주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4. 참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


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덕분에 와이프가 일한다. 만약, 재택근무가 불가능했다면 와이프는 일을 그만둬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회사가 우리 회사처럼 재택근무를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급으로 휴가를 권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라는 압박도 없다. 어느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번갈아가며 휴가를 쓴다. 그마저도 너무 길어져서 더 이상 쓸 휴가도 없다. 온라인 개학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에 한국 최대 기업이라는 삼성은 한시적으로 주 4일 근무를 허용한다 밝혔다. 다만, 주 4일이라도 최소 근무시간은 주 5일과 동일하다는 게 함정. 주 4일 근무하려는 사람은 하루치 근무 시간을 쪼개서 야근해야 한다.

당장 내야 할 월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 잃은 걱정도 없다.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되었거나,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면 누구든 무기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업의 특성상 가능한 이유도 있지만, 비슷한 업종의 회사가 모두 우리 회사 같지는 않다. 직원들의 건강을 돌보고, 직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나는 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위에 나열한 모든 부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생활을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7주간의 재택근무로 잃은 것

1. 잔고


집에만 있어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오히려 정상 출근할 때 보다 늘었다. 친구도 안 만나고, 외식도 줄었고, 카페도 안 가고, 문화생활도 즐기지 않는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자기 합리화에 능하다. 재택근무하면서 소비패턴이 달라졌지만, 그에 걸맞게 또 다른 패턴을 창조한다. 코로나 이전에 한 달 동안 100만 원을 썼다면, 지금도 100만 원 쓴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소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면, 한 달 지출이 50만 원이어야 정상 아닌가? 이때, “50만 원 적게 썼으니 저금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우와, 50만 원 더 쓸 수 있다”가 보통이다. 게다가 집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하지 않냐는 심리가 소비를 더욱 부추긴다. 닌텐도 스위치 하나 사기 위해 이틀이나 줄 서고, 동물의 숲 게임팩이 몇만 원이나 더 비싸게 거래된다.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사 매출은 나날이 급증한다.



2. 건강


살을 얻고 건강을 내어줬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살과 건강은 반비례한다. 즉, 살이 찐다는 건 건강을 잃어간다는 신호다. 경계하고 자기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 때는 조금이나마 의식적으로 관리했다. 운동하면서 몸을 키우는 건 아니었지만, 체중을 유지하고 옷차림에 신경 썼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보는 사람 하나 없고, 만나는 사람 하나 없다. 긴장의 끈은 예전에 놓아버렸다.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비치고 싶은 욕망이 아예 사라졌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 안 씻고 배 나오면 어떤가?



3. 참을성


오랜 재택근무와 독박 육아는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사실 가족 모두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와이프는 퇴근하고 아이 돌보느라 늦게 잠든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출근한다. 잠이 부족하고 항상 피곤하다. 날이 서있다. 아이는 놀아줄 사람 하나 없이 하루 종일 혼자 논다. TV 보고 게임하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소비한다. 엄마는 집에 없고 아빠는 집에 있지만 놀아주지 않으니 불만이 가득하다. 역시 예민하다. 가족 모두 예민하다 보니 마찰이 잦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 하나로 싸운다. 이전에는 누군가 날카로워도 다른 한 명이 참았기 때문에 싸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참지 않는다. 화가 나면 화를 낸다. 참지 않는다. 참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 나만 억울하고 나만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4. 영어 공부


재택근무와 함께 영어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출퇴근 시간에 하던 쉐도잉, 주 3회 정도 하던 전화영어 모두 멈췄다. 출퇴근을 안 하니 쉐도잉이 어렵고, 저녁이면 방전되어 전화영어 할 엄두가 안 난다. 둘 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재택근무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것 같지만, 이렇게 바뀐 환경에서도 꾸준히 영어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재택근무가 더 길어진다면 좀 더 마음을 다잡아 봐야겠지만, 지금 마음에서는 확신이 없다.



그러면, 재택근무는 부정적인가?



써놓고 보니 하나만 제외하고 모두 부정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의적으로 결정한 재택근무도 아니고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재택근무 환경이 아니던가? 온 세계가 부정적인 일로 가득한데, 나만 나을 수 있을까? 나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이 가득한데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닐까? 하루에도 수천 명이 목숨을 잃어간다. 간접적으로 영향받는 사람까지 따지면 감히 셀 수도 없다. 수억, 아니면 수십억이 넘을지 모른다. 일상이 망가지고 답답하고 몸도 지쳐가지만, 이 또한 지나갈 일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이 모든 것이 일상의 감사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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