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Apr 26. 2021

회사와 연애하지 않도록

10년 넘는 회사 생활에서 배운 몇 가지

10년이 넘었다. 인턴 등의 여러 고용 형태를 감안하면 대략 12년. 나는 이 긴 세월을 회사원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왔다. 2주만 다녔던 회사부터, 8년간 이어온 지금의 회사까지. 총 여덟 개의 회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쌓고 많은 것을 배웠다. 동시에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 잃었다.



|  연봉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다.


처음 입사할 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었다(내가 왜 그랬을까…). 건축을 포기하고 대기업 건설사에 들어갔더라면, 두 배쯤 높은 연봉으로 시작했을지 모른다. 나는 꿈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하고 싶다 믿는 일에 뛰어들었다.


회사 생활이 차곡차곡 쌓이고 꿈보다 돈이 중요하다 느껴질 때쯤, 나는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바깥세상에 관심을 끊고, 울타리의 크기와 견고함에만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하던 일을 고작 1년 만에 그만둔 것도 한몫했다. 하고 싶은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은 보상이 없다면 만족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사실, 직장인에게는 연봉과 승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좋고, 분위기가 좋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 회사의 인정과 그 인정에 합당한 보상이 중요한 기준이다. 생각해보자. 당장 내 주머니는 비어가는데, 좋은 분위기가 밥을 떠먹여 줄 리 없다. 일하는 순간에는 조금 덜 힘들지 몰라도,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속은 타들어 간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보상이다. 그 어떤 대체제로도 이것을 대신하기 어렵다.



|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 전설의 복싱 선수, 마이크 타이슨 -


인생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모두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내 계획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힌 순간, 그 계획이 얼마나 허술하고 실현 불가능한지를 서서히 깨닫는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주변 환경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계획은 완전하지 않다. 언제든 실패하거나 변경될 수 있다. 허나,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내 계획은 언제나 완벽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계획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계획이 실패했다고 자책하거나 절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바탕으로 계획을 개선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  나는 너의 친구가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발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데, 오로지 사람 때문에 사직서를 던지지 못한다. 나도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라, 나의 근속연수에 사람이 가지는 지분이 꽤 큰 편이다.


하지만, 회사는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이다. 즉,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회사의 구성원은 그 이익에 부합하도록 계약을 맺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것이다. 훌륭히 역할을 수행했다면 대가는 높아질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대가는 줄어든다.


회사는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관계에 놓여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구성원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양보는 있을 수 없다. 동기를 위해 내 승진을 미룰 수 있는가? 반대로 내 승진과 연봉을 위해 양보해줄 사람이 있을까? 회사의 자원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몫을 늘리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로 묶인 집단의 친분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어제의 친구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적이 되는 곳이 바로 회사다.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의 친밀한 관계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자. 회사는, 절대 아니다.



|  우물 속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개구리 같다.


내가 왜 이렇게 저 사람을 싫어했었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작은 일에 집착했을까?


퇴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한 적 있을 것이다. 분명 그 상황에서는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심각했는데, 한 발짝 물어서 바라보면 대부분은 하찮은 일이었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사람의 행동도 멀리서 바라보면 그럴만했구나 싶다.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는 넓은 세상에 살고 있다 착각하지만, 사실 아주 작은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에 몇 명과 대화하는가? 얼마나 자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가? 겨우 몇 명의 얼굴을 마주하고 단 몇 가지 일만 경험한다. 내게는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지만, 타인에게는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일일 뿐이다.


오랫동안 같은 회사에 있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전부인 것 같고, 이 길이 내 길인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물러서서 바라보면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깨닫게 된다.


다른 개구리를 밟고 올라선 개구리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우물 밖에서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우물 속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분야와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 길이 전부가 아님을 늘 상기해야 한다.



|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가?


가끔 늦은 시간까지 일할 때, 새삼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야근은 일상이었고, 밤을 새더라도 다음날이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근무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머리는 점점 굳어가고 생각은 마비된다. 이러다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손을 놓고 내일을 기약한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봉과 승진만을 위해 달리는 게 직장 생활이라면, 과연 이 두 가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개인 시간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포기하면서 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할까? 자신과 주변은 전혀 돌보지 않은 채 모든 걸 쏟아붓는다고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과연 회사는 이 모든 노력을 알아주기는 할까? 회사는 이익 집단이기 때문에 딱 성과만큼의 보상만 쥐어준다. 아무리 시간을 쏟아부어 나를 희생한다 하더라도 성과 없는 보상은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순간이다. 모든 행복한 순간을 포기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라면 뛰어들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웃는 모습, 곁에 있는 사람과의 순간, 건강한 몸을 가진 순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뿐이다. 세월이 흘러 아무리 후회해봤자, 지나버린 것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달려간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소중한 지금 모든 순간을 포기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몫이다.




정답은 없다. 겪어보고 부딪혀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축가 VS 개발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