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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 Apr 19. 2021

건축가 VS 개발자

나는 개발자다. 거의 9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개발자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개발자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이후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2년간 일했다. 건축이 싫지는 않았다. 적성에도 맞았고, 언젠가 내 집을 직접 짓겠다는 꿈도 있었다. 배워가는 기쁨이 있었고, 창조적인 작업에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 같지 않았다. 이상적으로 바라보았던 건축은 전혀 이상적이지도,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실력을 탓하기도 했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 지금과 달랐을 거라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10년이 지나, 내 옆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의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았다. 돌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개발자로 전향했다.


직업을 바꾸게 된 과정만으로도 몇 편의 글이 나오겠지만,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대신 내가 경험한 두 직업의 현실을 비교해 보려 한다. 모두 내 경험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정보로 판단한 내용이기에, 각 직업의 보편적 성격이라 오해하지 말자. 게다가 10년 전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을 묘사하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 워라밸

건축과 개발 모두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를 만들어 내는 업의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끝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마치는 작업과는 결이 다르다. 적당히 만족하고 끝마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개발자의 워라밸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내 기억 속 건축은 칼퇴근도 없고 주말도 없는 일 그 자체였다. 출근 시각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각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에 올인해야 하는 구조였다(52시간제를 시행하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반대로 일이 없을 때는 한 없이 한가하다. 건축은 워낙 경기에 민감한 분야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 상태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일의 밀도가 결정된다.


개발도 마찬가지다. 일부 게임 및 SI업체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다. ‘크런치 모드’라고 들어 봤는지 모르겠다. 한 번 출근하면 2~3일은 집에 가지 못할 정도로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생활이 거의 수개월간 이어진다. 거의 사람을 갈아 넣는 수준이다. 농협, 넷마블 사태가 아무 이유 없이 터져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국가에서도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고, 개인의 의식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직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노조를 설립하는 회사도 속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회사와 직원은 계약 관계일 뿐, 그 이상의 요구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 조직문화

평등하고 자율적 조직문화를 원한다면 건축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건축 같은 전통 산업군 회사들은 대부분 수직적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의 한 마디에 팀 전체가 술렁이고 프로젝트의 방향이 변경된다. 설득과 설명의 과정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업무를 진행시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반면에, 개발자 주축의 IT기업은 대체로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 (표면적으로) 직급과 상관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팀원의 말에 귀 기울인다. 직급이 낮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든 설명하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직적 문화에 비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만약 수평적 문화보다는 수직적 문화를 선호하는 개발자라면, IT 중심 기업이 아닌 금융이나 타 업종 개발자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업무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라 똑 부러지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대신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얘기해보자.


건축하던 시절 대부분 나의 업무는, 모형을 깎고, 자료를 모으고, PPT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도면도 작성하고 그래픽 작업도 했었지만, 거의 하루 종일 모형만 깎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생각보다 대단한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건축가의 모습은 일부 스타 건축가와 닮았을 뿐, 대부분은 비효율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직원이 수백이 넘는 대형 설계사무소(100명만 넘어도 대형으로 간주함)에서는 실제로 건물이 지어지는 도면을 작성하지 않는다. 기본설계 또는 계획 설계까지만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외주로 돌린다. 소방, 전기, 구조  등 세부적인 일은 모두 다른 회사에서 담당한다. 건축가는 마치 하나의 코디네이터처럼, 모든 일을 계획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는다. 물론 사무소 규모에 따라 실제 건물을 짓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곳도 있다.


개발자의 주 업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코딩이다. 어떤 개발자냐에 따라 하는 일은 달라지지만, 코드를 작성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조직 문화나 일의 성격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주 업무는 아니다(회사에 따라 주 업무인 곳도 있을 듯). 매니저 급 개발자가 되면, 실제 코드를 작성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업무를 관리하고 타 부서와의 협의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회의하고 전달하다 보면 하루의 업무시간은 금방 끝나버린다. 코딩할 때는 컴퓨터와 신나게 대화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매니저가 되어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느끼는 개발자도 꽤 많은 편이다.



| 보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적성에 맞고 재미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속하기가 힘들다. 앞으로 더 많이 보상할 테니 조금만 참으라는 말에 사람들은 더 이상 눈감아 주지 않는다. 회사가 나를 책임져 주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곳이 있다면,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다.


건축(설계)과 개발을 비교하자면, 두말할 것 없이 개발자 연봉이 훨씬 높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근무할 당시에 건축설계 업계는 악명이 높을 정도로 박봉이었다. 조금 찾아보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는 않은 것 같다(물가 상승률 정도의 상승). 개발자처럼 신입 연봉이 5,000~6,000만 원인 건축사무소는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이 정도 수준의 연봉에 도달하려면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그것도 대규모 사무소에서나 가능하다. 수 십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영세한 사무소에서는 월 200만 원을 받기 힘든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그리고, 개발자 누구나 신입으로 연봉 5,000만 원을 받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는 일부 기업에 한정된 사실일 뿐, 다른 업계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갭은 아주 큰 편이다. 게다가 철저히 실력중심이라 같은 회사에서 같은 경력을 쌓았다 하더라도, 작게는 수백에서 수천만 원이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 미래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은 월급과 강도 높은 업무에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해 자신의 사무소를 개업하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건축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돈이 되는 프로젝트를 따오기 위해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맥 같은 실력 외적인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력이 쌓일수록 대접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무소에서 어떤 일을 해봤느냐가 그 사람의 연봉과 처우를 결정한다. 신입 연봉은 많지 않지만, 최대한 다양한 일과 경험을 꾸준히 쌓아간다면 인정받는 건축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자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일 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모든 산업이 전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개발자가 필수인 시대다. 심지어 건축 설계 과정에서도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라고 하는 코딩 기반 설계가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다(업계가 받아들이지 않을 뿐). 개발자가 필요한 곳은 계속해서 늘어가는데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은 부족하니, 점점 보상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그렇다고 개발자가 되기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술은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시대 흐름에 뒤쳐진다면 자연스레 낙오될 수밖에 없다. 개발자로서 계속해서 업을 이어가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어떤 직업이라도 다른 직업보다 뛰어나거나 우월하지 않다. 그리고 어떤 직업이든 영원할 수 없다. 시대에 맞게 사라지는 직업이 있는 것처럼 시대가 변하는 만큼 새로운 직업도 탄생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금 하는 일만 고수하다가는 도태될 뿐이다. 세상의 변화에 맞게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도록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정보일 뿐입니다. 스스로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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