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is more 또는 simple is the best
less is more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가 3대 거장 중 한 명이다(나머지는 르 꼬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장식을 배제하고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더 아름답다는 그의 철학은 less is more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대표적인 작품은 판스워스 주택(Farnsworth House),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 등이 있다. 특히 1921년에 제안했던 빌딩 계획안이 기존 건축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철골 구조와 유리로 뒤덮인 투명한 건물은 마치 완성되지 않은 투명한 철골 구조물 같은 느낌이었다. 무의미한 장식과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자는 그의 철학이 철저히 반영된 건물이었다. 하지만, 기존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건축계는 거부반응을 보였고 실제로 지어질 수 없었다.
이상이 과하면 현실을 망각하기 마련. 판스워스 주택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모든 접합면은 볼트를 사용하지 않고 용접으로 처리했다. 또한 평편한 유리면을 만들기 위해 단열도 잘 되지 않는 유리를 사용했다. 비현실적인 공법으로 인해 건축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나중에는 건축주와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사람이 살만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 낮은 지대에 건물이 있다 보니,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긴다.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담요와 슬리퍼가 필수다. 벽난로의 굴뚝을 밖으로 노출하지 않아서 불을 피우면 연기가 모두 실내로 퍼진다. 한 마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작품을 지었다 할 수 있다.
less is more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에 대한 다양한 반론이 등장하면서 less is bore, more is more 같은 표현으로 많은 비판받는다. 건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라면 그것을 과연 건축이라 할 수 있을까? 미스의 간결함은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이 필요한데, 자신의 철학에만 집착했다. 아이러브뉴욕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밀튼 글레이저는 just enough is more라고 패러디하며 모더니즘을 비판했는데, just enough라는 말에는 최소한(또는 필요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간결함이 아름다운 것은 맞지만, 최소한의 현실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simple is the best
미스의 철학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수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애플이 있다. 잡스 역시 간결함에 매료되었지만, 사실상 애플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가 만들어냈다. 간결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누구든 쉽게 쓸 수 있으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기기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애플은 심플한 디자인을 위해서 기존 IT산업의 일반적 생산과정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전에는 엔지니어가 하드웨어를 먼저 설계하고, 그에 맞는 껍데기를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반면에 애플은 디자인을 먼저 만들고 그에 맞게 하드웨어를 설계했다. 디자인에 반하는 기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을 때에도 디자인을 바꾸는 대신 기능을 제거했다. 간혹 고집스러운 디자인 때문에(미스처럼) 제품 자체에 결함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디자인에 최적화된 하드웨어 설계가 엔지니어의 기술을 향상하는 역할을 했다. 결과는 대 성공. 아이팟(iPod), 아이맥(iMac), 아이폰(iPhone) 등 시대에 남을 만함 제품을 만들어 냈다.
모든 기능이 디자인에 표현된 기기는 만들기 쉽다. 필요한 기능 하나에 맞는 버튼 하나를 추가하면 그만이다. 반면에 간결한 UI를 가진 기기를 훨씬 만들기 어렵다. 간결하게 만들다 보면 자칫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조작이 너무 복잡해질 수 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학습이 용이해야 하고 복잡해서 기억해야 할 필요도 없어야 한다. 이 중간점을 잘 찾는 것이 간결한 디자인의 핵심이다. 너무 심플해서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고(less is more), 사용자에게 충분히 쉬우면서 기본에 충실(just enough is more)해야 한다.
인생에도 간결함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다. 정보는 넘쳐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수없이 많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 “나”라는 자아를 가진 인격체는 이런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어디에 있더라도 적절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버려지지 않으려면 자기와 맞지 않아도 노력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친절한 직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집에서는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되도록 노력한다. 각종 모임에 나가서도 사교적이고 성격 좋은 친화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인데 각 집단에서는 각자 다른 역할을 하도록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집단에 맞는 여러 가지 가면을 준비해두고 상황에 맞게 바꿔가며 행동한다. 마치 여러 연극 무대가 있고 각각의 극에 맞도록 연기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약간의 연극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내가 속한 모든 집단에 맞는 적절한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다. 어떤 집단에 잘 녹아들지 못하면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생각한다. 그 집단에서 부여한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곳에서 만족할 만큼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유독 가정 불화가 많은 것도 비슷한 이치다.
자신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 사고방식은 대체로 타인으로부터 비롯된다. 독자적인 생각인 듯 하지만 어디서 들었거나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과한 타인의 영향은 가끔 혼란을 야기한다. 나는 A와 B라는 일에 집중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떤 말을 듣고서 갑자기 C라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한다. D와 관련된 책을 읽고 D를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A와 B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C와 D에 집중한다. 하지만, C와 D는 또다시 E와 F에 밀려난다. 악순환이다. 나중에는 진짜 뭘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봉착한다. 뉴스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수입이 공개되면 아이들 꿈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변신한다. 연예인 건물주 이야기가 나오면 건물주가 꿈으로 등장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정보에 현혹된다.
인생은 간결해야 한다. 모든 집단에서 남들이 원하는 만큼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가정은 예외로 하자). 주어진 역할에 나 자신을 잊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넘쳐나는 불필요한 조언과 정보는 적절히 차단해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는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흔들리지 않고 하고자 했던 일들을 꾸준히 지속하자. 그러면,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