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꼭 불덩이 같다. 지금은 꽤 서늘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마치 거대한 용광로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고 싶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빈둥거리면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프가 말하길,
캠핑 예약해놨어. 이때랑 이때랑 이때..
‘음?? 가장 더운 8월인데? 뭐? 2박 3일?’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다.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더워 죽을 판에 캠핑이라니. 와이프가 예약할 때 분명 내게 말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건성건성 들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할까. 가는 수밖에 없지.
캠핑 당일, 평소 주말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다. 실컷 자고 싶지만, 늦게 출발했다간 금세 해가 떨어진다. 가까운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같은 경기도라도 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곳도 즐비하다.
이제 짐을 옮길 차례다. 현관 앞에 가득 쌓여 있는 짐을 차에 실어야 한다. 택배 기사님들이 쓸 법한 수레를 꺼내어 차곡차곡 쌓아본다. 무게도 무게지만, 부피도 만만치 않다. 한 번에 옮길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러 번 오르내린다.
짐을 보면, 이게 다 들어갈까 싶다. 큰 차도 아니라 조수석에 짐이 한가득이다. 어디 피난이라도 가는 것 같은 모양새다. 짐만 실었는데 땀이 나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후텁지근하다. 진짜 덥다. 왜 하필 이런 날씨에 캠핑을 가야 할까? 속으로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자신만 책망해본다.
차의 시동 버튼을 누른다. 이제 출발이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늦어졌다. 오늘은 어딜까?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하니 2시간 30분이 나온다. 그리 멀지도 않은데 주말이라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뭐, 어쩔 수 없지. 경기도 사는 내 잘못이니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캠핑장,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와 우렁찬 매미 소리가 제법 잘 어우러진다. 산 속이라 그런지 바람도 시원한 편이다. 예약한 사이트(텐트칠 장소)를 확인하고 그 앞에 차를 댄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이다. 대부분의 캠핑장이 거의 그렇다(나무가 많으면 벌레가 많이 떨어져서 별로다). 우선, 타프(방수천을 뜻하는 타폴린의 준말)를 친다. 캠핑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팁을 하나 주자면, 여름에 쓸 타프는 반드시 블랙 코팅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위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타프의 그늘이 뜨거워진 살갗을 서서히 식혀준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이제 텐트를 칠 차례다. 원터치 텐트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괜스레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바람이라도 강하게 불면, 곧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힘들어도 직접 치는 텐트가 안심이다. 우선, 폴대를 세우고 줄을 잡아당겨 모양을 만든다. 그러곤, 꼼꼼하게 팩을 박아 고정한다. 보기에는 쉬어 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다. 특히 이런 불볕더위에서는 몇 배는 빠르게 체력이 고갈된다.
타프와 텐트를 치면, 그럴듯한 쉘터가 완성된다. 이제 끝일 것 같지만, 일은 계속된다. 우선, 찜통 같은 텐트로 들어가 바닥 매트를 깔아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풍선 불듯이 매트에 공기를 집어넣는다(펌프를 사용하지 않는 매트라 어느 정도 공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테이블을 조립하고 캠핑 의자를 꺼내 볕이 들지 않는 곳에 배치한다. 그 옆에 조리할 공간을 만들고, 각종 도구를 세팅한다. 이제 얼추 끝이다. 허리를 펴고 잠깐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곧 식사시간이다. 그 말은 다시 일할 시간이라는 것. 캠핑장에서 저녁 먹는 방식이야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방식으로 저녁을 준비한다. 화로대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굽지 않고, 오로지 프라이팬과 냄비만 사용한다. 거창한 식사에는 언제나 거창한 정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다닥 저녁을 해치우고 간단히 정리하면 정말 끝. 이제부턴 쉬는 시간이다. 우선, 불멍을 위해 화로대에 불을 피운다. 안마의자처럼 캠핑의자를 뒤로 젖힌다(이게 되는 모델이 있다). 제법 시원해진 산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시고 다시 내쉰다. 온몸에 힘을 빼고 살짝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고 무심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앞에 별이 쏟아져 내린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 소리와 머리 위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한 손으로 맥주 캔을 집어 올린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노동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오로지 캠핑은, 이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캠핑이 잘 맞냐 내게 물어본다면, 나는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좋지도 싫지도 않다. 딱 절반만 좋고, 절반은 별로다. 온갖 캠핑의 노동과 벌레의 습격, 옆 텐트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칠 때면, 정말이지 뭐하러 온건가 싶다. 그럼에도 노동 끝의 달콤한 휴식과 맥주 한잔, 이른 아침의 새소리와 차갑고 맑은 공기, 그리고 두 손으로 감싸 쥔 따뜻한 커피 한잔이면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3월의 눈처럼 스르륵 녹아내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좋아한다. 이보다 중요한 이유는 없다. 캠핑장에서 새 친구 만나는 걸 좋아하는 하나뿐인 딸아이와, 타들어가는 나무를 바라보며 시간 보내길 좋아하는 와이프를 보고 있자면, 나는 조금 힘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럼에도 캠핑은 참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