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으로 사회의 문이 서서히 열리나 싶더니 델타 변이에 또다시 셧다운이다. 2단계까지 완화되었던 거리두기도 단숨에 4단계로 격상되었다(이제는 4단계+a 이야기도 들린다). 회사들은 앞다투어 재택근무를 부활시켰다. 음식점 이용은 제한되었고, 사적 모임 제한이 강화되었다. 밖에서 저녁 먹자는 약속을 가족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숨만 나올 뿐이다.
요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클래스 당 수련 가능한 인원이 줄었다. 이전에는 3단계만 되어도 운영 자체를 금지시켰는데, 반발이 심한 탓에 운영 금지는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것. 음??
샤워 이용이 금지되었다고????
이렇게 덥고 습한 여름에 수련 후 씻지 못한다니. 땀으로 몇 번이나 샤워할 정도로 흠뻑 젖을 것이 분명한데, 샤워를 금지하다니. 생각만으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운동 후 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땀에 절은 채 지하철을 타거나 회사로 돌아간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수련을 포기하고 말겠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지.
때마침 요가원 등록 기한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몇 번의 수련은 아깝게 날아가겠지만,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기에, 당분간은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쉬는 게 나아 보였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샤워가 가능한 상황이 되면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요가를 쉬기로 정하니 회사에 나올 이유가 사라졌다. 일 년 넘게 재택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기 때문에 사무실로 출근은 선택이었다. 다만, 서비스 출시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사실 그것은 일부일 뿐 7~8할은 요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사라졌다. 자연스레 출근할 마음도 희미해졌다. 자. 이제 다시 동굴로 들어갈 시간이다. 집안에 콕 처박혀서 배달의 민족이나 끼고 살아야지.
그러나 무작적 요가를 쉬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하면 될 것 같았다. 요즘 홈트가 대세 아닌가? “7시쯤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일주일에 3번 정도면 될 거야”. 별일 아닌 듯 당연하게 생각했다. 수련한 지 일 년쯤 지났겠다, 아사나(자세)도 몸이 다 기억하고 있으니 문제없을 것 같았다.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 없이 습관처럼 잘 이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 착각이었다. 재택근무 첫날 아침, ‘오늘은 첫날이니까 쉬자’. 출근 직전까지 침대에서 기어 나오지 않았다. 재택근무 둘째 날 아침, ‘오늘은 좀 피곤하네’. 재택근무 셋째 날,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실수였다. 바쁘게 살아오는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나로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다. 천성이 게으르고, 귀찮은걸 싫어하는 나. 누군가 시키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 나. 나는 당근이 있어야 나서고, 채찍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런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뭔가를 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요가 수련은 여러모로 이롭다. 잘 알고 있다. 마음뿐 아니라 몸도 기억한다. 하루 종일 나쁜 자세로 앉아 있던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늘 달고 살던 어깨와 허리 통증을 말끔히 치유한다. 경험으로 봤을 때, 웬만한 치료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요가의 순기능을 이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것을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귀찮은 대상이다. 마치 채소가 몸에 좋은지 뻔히 알면서도 자극적인 음식에 끌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몸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글쓰기 습관을 만드려고 그 얼마나 오랜 시간 다짐만 했던가. 아마 시도만 수 십 번, 생각만 수 백번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고작 1년 만에 요가를 나의 일부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고백하자면, 재택근무를 다시 시작한 최근 3주 동안 요가를 시도한 건 단 한 번뿐이다. 그것도 15분 정도.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의 6 Fundametal Asanas(여섯 가지 기본자세)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역시 요가야. 요가는 정말 훌륭한 운동이야’ 마음속으로 되새겨보지만 역시나 그때뿐. 게으름은 쉽게 이길 수 없는 만만치 않은 빌런이다.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은 사실, 누구에게나 어렵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관성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뭔가를 끼어 넣어 방향을 바꾸려면, 그 관성을 이겨낼 만큼 큰 힘이 필요하다. 정신력이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참아내는 과정을 몇 번이고 견뎌내야 한다. 그만큼 삶의 방향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가는 아직 내 삶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할까? 말까? 귀찮아. 그냥 쉴까?’.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똑바로 서기 위해서는 무수한 내적 갈등을 이겨내야만 한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수련에 임할 수 있기까지 수년의 수강료와 누군가의 구령이 함께해야 한다. 아주 오랜 시간, 다음 동작이 뭔지 조금도 생각도 필요 없는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카드를 긁어야 할지 않을까.
아무튼 코로나가 미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