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쓰자
때가 되면 한 번씩,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잘 쓰고 있는 걸까? 방향은 맞는 걸까? 지나치게 감정적이진 않을까? 등, 온갖 걱정을 하며 나의 글쓰기를 돌아본다. 주로 브런치 글을 참고 삼아 읽는다. 몇 편 읽다 보면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시간이 없다, 소재가 없다, 글쓰기가 잘 안 된다는 둥, 참 다양한 이유로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행이다. 하지만, 걔 중에는 힘들어도 매일같이 글을 발행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들쭉날쭉 빈도가 제각각인 사람도 있다.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매 번 다른 이유로 글쓰기에 브레이크 걸린다. 이번에는 ‘재미’다. 내 글은 내가 읽어도 참 재미가 없다. 딱딱하고, 무겁고, 시종일관 진지하다. 가벼우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진지하면서 위트 넘치는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지 쓰는 것마다 재미가 없다(사석에서는 웃기다. 장담한다). 고치고 또 고쳐보아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적당히 타협하고 글을 마무리한다. 시간을 쏟아봐야 나아질 리 없단 걸 알기 때문에, 적당히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글에서 ‘재미’란 무엇일까? 읽을 때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 걸까? 소설이나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은 제외하자. 그리고 브런치의 주력인 에세이로 한정해보자. 에세이에서 재미를 느끼는 요소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한다. 하나는 공감할만한 소재, 다른 하나는 그 소재를 풀어내는 문장의 흐름과 적절한 표현력이다.
소재가 없다고 쓰기 어렵다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사실 주변에 널린 게 소재인데, 모두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 안달이다. 대부분 회사를 다니고, 연애를 한다. 인간관계에 좌절하고, 미래를 불안해한다. 인생은 다른 듯 비슷한 면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한정해보자. 늘 소재 찾기에 골머리를 앓는다. 꾸준히 쓰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자기 이름 박힌 책을 꿈꾼다. 소재가 특별해야 많이 읽힐 거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일상의 작은 조각 하나에 공감하고,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좋은 소재만으로는 부족하다. 현학적이고, 지나치게 길고, 몇 번 읽어야 이해 가능한 문장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읽으면서도, ‘닫기’ 버튼을 누르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자연스러운 흐름, 간결한 문장, 위트 있는 표현, 그리고 적절한 소재가 잘 버무려져야 비로소 괜찮은 글 하나가 완성된다.
배우면 좀 나을까? 나름 유명한 작가님들의 강의를 들으면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한 달짜리 강연을 들으면 갑자기 실력이 쑤~욱 올라갈까? 단 한 문장도 쓰기 어려운 사람이 강연 하나만으로 작가가 될까? 아니라고 본다. 글에는 왕도가 없다. 수 백번 ‘글쓰기 힘듦’을 겪어야 하고, 지난한 노력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 아닐까? 재미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머뭇하게 만든다. 부족한 실력 탓에 글을 공개하고 싶지 않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유명 작가도 비슷한 과정을 수없이 거쳐왔음을 기억하자. 또한 내게 좋은 글이라고 타인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공들여 작품 하나 완성했다 싶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솔직히 이럴 땐 살짝 화가 치민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평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니까.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감에 쫓겨 공개하기조차 부끄러웠던 글에 조회수가 늘고 공감의 댓글이 마구 달린다. 놀랍다. 계속 이렇게 할까 보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글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다. 글은 쓰는 사람에게서 시작하지만, 읽는 사람에게 도달해야 비로소 완성되니까. 그러니, 재미있게 쓰겠다 집착한들, 큰 의미는 없다.
정말 쓰기 싫을 때가 있다. 몸은 힘들어 징징대고 쓸 거리 하나 없이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본다. 이럴 땐 정말이지 쉬고 싶단 마음뿐이다. 지난주에 썼으니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타협을 시도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갈대처럼 흔들린다. 하지만, 이런 나태함을 이겨낼 때, 비로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힘들면 딱 쓸 수 있는 만큼만 쓰자. 만약 쓸 거리가 없다면, 지금 내가 쓰는 것처럼 글쓰기에 관한 글은 어떨까? 왜 힘든지, 무엇이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문장으로 옮기자. 재미는 읽는 이의 몫으로 떠넘기고, 오직 자신의 언어로 된 글을 쓰자.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