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Dec 19. 2021

꼰대의 글쓰기, 열린 글쓰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점점 꼰대가 되고 있는 걸까??


도대체 글쓰기와 꼰대가 무슨 상관일까?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앉아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이 때문일까? 마흔을 바라보고 있어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꼰대라는 말이 주로 나이  사람을 지칭하니까. 나이와 꼰대의 연관성을 부정할  없다. 나이가 많아지면 안정감을 추구하니까.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느껴 옛것에 기반한 사고를 한다. , 나이가 들면 꼰대가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모두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에는 열린 자세로  세대와 소통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요즘은 어딜 가나 꼰대는 대접받지 못한다. 꼰대라고 낙인 되는 순간부터 기피대상 1호가 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만, 입을 열기 무섭게 사람들은 귀를 닫는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 친구 사이에서도, 어설픈 충고와 라테의 시전은 금기시된다.


도대체 ‘꼰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내가, 우리 사회가 이토록  단어에 민감해진 걸까? 도대체 어떤 사람을 꼰대라 부를까? 


어리다고 쉽게 반말하거나, 답을 정해놓고 의견을 묻거나, 술자리를 강요하거나,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하거나,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꼰대라 부른다. 나는 쉽게 반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답정너 스타일도 아니다. 어디서든 대세를 따르는 편이다. 술자리는 내가 싫다. 특히 불편한 관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꼰대가 아닐까 뜨끔하는 건, 요청하지도 않은 충고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적이 생각 나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상대방은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람마다 꼰대를 가르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을 꼰대라 생각한다. 학위 같은 게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과 트렌드,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과거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본인만 옳다고 생각하거나, 과거의 이야기가 영웅담인 것 마냥 떠들어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마치 대선판의 그분들(?) 같다.


요즘 대선판을 보고 있으면, 실소가 절로 난다. 꼰대끼리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권력 쟁취가 목표인  같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시해야  사람들이 과거에 사로잡혀 정치놀음이나 하고 있다. 이들에게 무슨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있을까? MZ세대로 대표되는 20대가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말이 잠깐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글쓰기와 꼰대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자. 이번에는 글쓰기의 관점이다. 


글쓰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온갖 뒤섞인 정보를 분류하고 정제한 , 문장을 만들 이으면 비로소 하나의 글이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은  하나의 견해가 되고, 체계화된 정보가 된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비슷한 맥락의 글을 반복해야 한다. 쓰면 쓸수록 의견은 확고해진다. 그리고 내 글에 열광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어떤 글에서 A라는 주장을 했다면, 이후에도 A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주장 강화는 위험하다. 적을 만들고 사람들과 벽을 쌓는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껏, 나는 줄곧 회사라는 구조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사실 이는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다. 모든 사람이 회사에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회사에서 성공을 꿈꾼다. 또한 취업이 어려운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라도 같이하기 싫은 곳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절실하게 입사하고 싶은 공간이 .


아무리 내가 맞다 생각하더라도 어디에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자꾸만 한쪽 방향으로 흐른. 그래서 글쓰기가 점점 부담스럽다. 글을 쓰고, 공개하는 것이 망설여진다.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는 감사하지만,  의견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있다는 생각에 머뭇거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려고 한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다. 아이러니하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급변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계속 써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만드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재활용품으로 로봇을 만들던 어릴 적이나, 공간을 창조하는 건축을 공부할 때나, 지금처럼 글을 쓰는  모두 무언가를 들어 내는 일이다. 창조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계속 자신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창작자에게 있어 정체만큼 무서운  없다. 비슷한 작품,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 똑같이 낡은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는 필가는 언젠가 도태된다. 마치 점점 깊어지는 우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와 같다.


창작자는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방시혁, 하이브 대표이자 BTS 제작자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