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Mar 21. 2022

영화가 좋았는데, 이제는 미드만 본다

내가 변한 건지, 세상이 변한 건지

언젠가부터 드라마만 보기 시작했다.

국가도 가리지 않고 한국, 미국, 영국, 스페인 등 전 세계 드라마를 섭렵 중이다.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역사물, 현대물, 미스터리 등 유명하다는 드라마는 모두 찾아본다. 물론, 예전에도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나 영화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드라마만 찾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걸까? 글쎄, 잘 모르겠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나가기 시작한 뒤부터 일까? 아니면, 나이가 40줄에 접어들면서부터 일까? 코로나 때문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가 아닌 드라마에 손이 가는 걸 멈출 수 없다.  


20대에는 영화에 빠져있었다. 

매일같이 찾아보는 영화광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두어 편은 챙겨보았다. 하루에 세편을 내리  적도 있다. 틈만 나면 비디오 가게에 들러 한아름 테이프를 빌려왔다. 그러곤 자취방의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며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영화가 끝나도 침대에 누워 오랜 시간 장면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술자리에서도 영화는 최고의 안줏거리였다.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가 끝나는 법이 없었다. 화양연화에 양조위 눈빛 장난 아니지 않냐?’, ‘반전 영화하면 유주얼 서스펙트지’,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스타일이 좋아 같은 말을 서슴없이 던졌다. 20대의 나는, 영화를 사랑했다


그런데, 지금은 드라마를 본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 볼까?’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접고, 드라마로 눈길을 돌린다. 왠지 모르겠지만, 영화 보는 게 꺼려진다. 부담스럽다. 드라마를 볼 때는 ‘쉬고 있다’는 기분인데, 영화는 그렇지 않다. 조금 능동적인 느낌이랄까? 한시도 머리를 쉴 수 없다. 감독의 의도, 메시지, 미장센, 카메라 워크 등 끊임없이 뭔가를 추측하고 또 분석해야 한다. 영화가 끝나도 추측이 맞나 확인하려고 기사나 각종 블로그를 찾아다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괜히 피곤한 기분이다.


어쩌면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속물의 성격이 강한 드라마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주요한 목적이다. 가장 중요한 지표는 시청률이다. 그래서, 이탈자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흥미로운 떡밥을 잔뜩 뿌려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고, 회차 마지막 장면을 극적으로 편집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잔인하고 성적인 장면을 넣어 시청자의 흥미를 돋게 만든다. 게다가 시즌을 마무리할 때면, 어떤 방식으로든 여지를 남긴다. 인기에 따라 다음 시즌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끝나지 않는다.


반면 영화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다.

정해진 시간(약 2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에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담아낸다.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다. 서사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 그래서 가끔은 영화가 어렵다. 갑자기 툭하고 끝나버리거나,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영화도 있다.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멍하게 바라보는 영화가 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영화도 있다.


소설은 어떨까?

일반 소설(어떤 수식어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과 웹소설이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와 비슷하다. 일반 소설은 짧지만, 함축적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곳곳에 숨겨진 상징과 복선을 찾고,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반면, 웹소설은 드라마와 판박이다. 다음 권을 사고 다음 편을 결제하게 만드는 게 지상 최고의 목표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쉽게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를 사용해 독자를 유혹하고, 드라마처럼 곳곳에 각종 떡밥을 뿌린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고, 웹소설을 보는 것은 오롯이 취향의 문제다. 무엇이  낫고,  못하다 말할  없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영화나 소설을 통해 사유하고픈 욕구가 있는 사람도 있다. 20대의 나는 후자였지만, 지금은 철저히 전자로 변했다. 영화와 소설은 멀리하고 드라마와 웹소설을 소비한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지만, 예전의 내가 꿈꾸던 모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과 낭만을 꿈꾸었던 20대의 나는, 이제 살아내기 급급한 현실주의자가 어 버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세상이 변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변한 세상에 내가 맞춰가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를 마시는 가장 완벽한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