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에서 따뜻한 군락을 이루기까지
내게는 사회가 맺어 준 세 명의 자매들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때로는 진한 핏줄을 나눈 혈육보다
더 끈끈하게 이어진 나의 언니들.
스물다섯 지방 출신의 뜨내기에겐
모든 것이 생경한 서울,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직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도합 서른도 채 안 되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모이게 된,
우리는 모두 경상도에서 왔다.
따뜻한 해안을 떠나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내려앉은 갈매기처럼.
남쪽과는 다른 온도를 지닌 낯선 도시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자리를 지켰다.
가끔 깍쟁이 같은 사람에게 된통 부리를 데이고
거친 기류에 깃털이 흐트러져도,
더 굳건한 발톱과 질긴 날개로 비상했다.
무리는 함께 바람을 타고 하늘을 선회했다.
봄에는 꽃가루를 묻힌 채 나들이를 떠나고,
여름엔 바다를 건너 파도 소리를 들었다.
함께 단풍을 보고 눈을 맞으며,
네 자매는 촘촘히 짜인 그물처럼 견고해졌다.
큰 언니는 항구 같은 사람이었다.
성난 파도가 밀려올 때면
차가운 물살을 피할 쉼터가 되어주던 그녀는,
우리가 가끔 출렁이며 쏟아내는 투정과
성가시게 흔드는 고민에도 여의치 않고
한결같은 외벽으로 감쌌다.
언니는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부서진 조개껍데기처럼
해변가 구석 깊숙이 파묻힌 나를 꺼내어
잔뜩 묻은 모래를 털어내 주었다.
바람을 쏘이고, 산책을 시키고,
손수 밥을 만들어 먹이면서,
울다 먹다를 반복하는 나를 묵묵히 토닥였다.
둘째 언니는 믿음직한 항해사 같았다.
고장 난 나침반처럼 방향을 잃은 배가
망망대해를 떠돌 때면,
단단히 닻을 내려 중심을 잡아주던 사람.
언니는 거친 풍속과 요동치는 해류에도
현명하게 물때를 읽고 항로를 정했다.
섣부른 과속을 할 때면 키를 잡아주고,
삶이 부유하는 해초처럼 늘어질 때면
건져 올려주기도 하는,
언제, 어디를 향하든 길잡이를 마다하지 않던
우리들의 일등 항해사.
제주도에 홀로 있던 나에게 물길을 가르고 찾아와
수평선 위에 걸린 노을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무료하게 떠돌던 하루에 프로펠러를 돌려,
나를 특별한 여정으로 인도했다.
막내 언니는 바다 아래 일렁이는 산호초를 닮았다.
겉보기엔 물살에 흔들리는 꽃처럼 유약하지만,
누구보다 곧은 뿌리를 가진 굳세고 다정한 사람.
때로는 물방울을 머금은 듯 순수했고,
때로는 깊은 바다 내음으로 존재를 흩뿌렸다.
하늘을 날다 지쳐 수면을 내려다보면,
언니는 언제나 자유롭게 흐드러진 채로
우리를 향해 해사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 상냥함에
늘 마음이 편안하게 풀렸다.
스스럼없이 온정을 건네고
소담한 애정을 챙겨주던 언니는
우리들의 작은 군락이 되어 고요히 머물렀다.
나에게 있어 세 자매는,
얽히고설킨 청춘의 항로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나침반이자,
암초투성이었던 바다에서 찾아낸
가장 다정한 목적지였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다른 이의 엄마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진 나의 엄마를 대신해,
신이 몰래 세 명의 언니를 내려준 건 아닐까.
언니들은,
엄마에게 할당된 애정의 질량을
고루 덜어가 나를 배불렸고, 덕분에
낯선 땅의 혈혈단신이었던 어린 갈매기는
외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새겼다.
어느덧, 서른이라는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은 우리.
숫자의 앞자리가 몇 번이고 바뀌어도,
언제나처럼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비행할 것이다.
자유롭게 흩어져 있다가도,
때가 되면 함께 활공하는 갈매기가 되어
늘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