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와 키보드 사이, 나를 그리는 시간

잃어버린 나를 정렬하자 심장이 뛰었다.

by 청은



나는 새하얀 아트보드를

점, 선, 면으로 채우는 디자이너다.

9년 동안, 붓 대신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서

빈 대지를 그려나갔다.


여백은 나의 손을 타고 저마다의 자리를 찾는다.

얼굴이 되는 메인을 구축하고,

레이아웃이라는 뼈대를 세우고,

색상과 효과를 더해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다.

눈, 코, 입부터 신발에 새겨진 무늬까지

매무새를 다듬는 조정의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디자인은 생명을 얻는다.


그 하나의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마치 투명도가 낮아진 오브제처럼 흐릿해졌다가

이내 숨은 레이어가 되어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상업 디자인은 예술과는 달라서,

누군가의 의도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을 지운다.


그러나 그렇게 삭제된 내 모습이,

결국 반영되지 못한 의견이 크게 아쉽지도,

딱히 아깝지도 않다.

모니터 너머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추가 수정만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를 두고 거창하게 ‘매너리즘’이라 부르기엔,

이 세계는 내게 너무 익숙하다.

나는 암묵적인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

꽤 편안했다.


다만 문득,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캔버스를 상상해 보다가 희미한 갈증이 일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목소리가 짙게 밴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매일 사용하던 채도 높은 RGB 색상이 아닌,

흑백으로만 채우는 모니터는 무슨 느낌일까.


나는 홀린 듯이 움직이는 마우스에 이끌려,

원형과 사각형 대신 자음과 모음을 생성해 본다.

도형의 모서리 대신 활자를 다듬어 본다.


여느 때처럼 텅 빈 도화지에,

이번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 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어린 시절,

상처, 결핍, 행복, 웃음.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모든 단어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어지러이 앉혀진다.

이내 뜨거운 호흡과 생생한 숨소리를 받아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올바른 시선을 담아 투명한 눈동자를 그리고,

머리카락에 생각의 결을 싣는다.

의지는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목소리는 울대를 타고 스며든다.

커서를 몇 번 까딱거리자

그 모든 생동한 움직임들이 가지런히 정렬된다.


그렇게, 빼곡히 들어찬 활자들이

마치 사람을 닮았다.


잠들어 있던 자형의 획들이 살아나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넨다.


키보드를 타고 뛰노는 손가락이 제법 신난다.

마우스는 정신없이 글자와 문장을 넘나들지만,

틈 없이 채워지는 빈 공간에 낯선 희열을 느낀다.


9년간 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던 내가,

이제 나를 위해 글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시금 심장이 뛰었다.